나의 손(hand) 나의 손(SON)
축구와 나의 인연은 거의 악연에 가까웠다. 30대 후반 수련회에 참석해 잠시 휴식시간에 넓은 공터에서 축구를 하게 되었는데 축구는커녕 달리기도 제대로 못하는 나는 그저 공을 따라다니며 뛰기 바빴다. 분명 골키퍼는 아니었는데 어쩌다 보니 우리 팀 골대 근처에 있게 되면서 대포알처럼 날라 오는 상대방 골을 막기 위해 본능적으로 글러브도 끼지 않은 왼손으로 볼을 막았는데... 앗뿔싸! 금세 왼쪽 손 엄지부위가 북한산만큼 부어올라 병원으로 직행... 공교롭게도 손의 뼈는 골절이 되도 워낙 작은 뼈들이 많아 엑스레이 상에서는 골절이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많단다. 작은 시골 병원에서 급하게 약 처방만 받고 엑스레이 상 골절도 보이지 않으니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거니 했다. 2주 정도를 한방으로 침 맞으며 고생고생하다... 도저히 통증과 붓기가 가라앉지 않아 종합병원에서 MRI를 찍어본 결과, 왼손 엄지 아랫뼈에 골절되었음을 발견!! “이리 골절 되었는데, 바로 와야지, 2주후에 와서 나에게 어떻게 하라는 거냐고, 이미 주위 조직이 떡이 되었겠다.”며 의사에게 엄청 혼나고, 끝내 수술대에 올랐다. 그로부터 20년~
내 인생에 손흥민이 들어왔다.
이런 축구의 흑역사가 있던 나는 손흥민 선수에게 관심이 없었고, 남편이 손흥민의 역습 공격이라며 영상을 보여주며 너무 멋지지 않냐고 하지만 한 번 휙 보며 “역습을 해서 공을 넣었구만”, 2020년 푸스카스 상을 언급해도 그닥 반응 없이 “공은 둥그니 들어가겠지” 했다. 그러던 2023년 말 어느 날, 손흥민의 아름다운 골... (호흡 한번 가다듬고) 그러니까 말하자면 손흥민이 중거리에서 슛을 하는 장면인데... 둥근 축구공이 아름다운 포물선을 그리며 예술적으로 상대방의 구석진 골대안으로 들어가는 명장면을 본 것이다. 거미손을 가진 골키퍼라도 도저히 막아내지 못할 것 같은 위치에 꽂아 넣는데... 이리 아름답고 우아할수가! 마치 테니스 황제 페더러가 원핸드로 백핸드 하는 그 우아한 모습을, 축구의 신 손흥민은 중거리 슛에서 그대로 재현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순간 축구공은 골대안으로, 손흥민은 나에게로 들어와 버렸다. 이때부터 축구에 대해, 또 공을 군더더기 없이 심플하고, 우아하게 예술적으로 차는 손흥민에 대해 참으로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손흥민의 오지랖 넓은 따뜻한 리더쉽
먼저, 손흥민 선수가 독일 분데스리가(함부르크, 레버쿠젠)를 거처 토트넘까지 오게 된 궤적에 대해 다 찾아보고, 손흥민 선수가 속한 토트넘 역사, 토트넘 선수들의 이름과 출신 국가, 선수들의 배경, 감독 심지어 전략 등 꿰어질 때까지 관심을 가지고 이해하려 했다. 이러니 남자들이 축구에 열광하는 이유도 알 것 같았다. 이때 당시 나의 모든 관심은 축구에 있었다. 손흥민은 EPL 토트넘에 올해로 10년을 있으면서 사람 좋은 이미지로 비추어질 수 있지만, 인종 차별을 극복해 가며 동양인 최초로 유럽 축구 주장을 하고 있다. 주장으로서 한국인의 진실 된 오지랖 넓은 따뜻한 리더쉽을 발휘했다. 10대 젊은 선수들이 EPL에 잘 적응 할 수 있도록 매번 아침 식사를 같이 하며 훈련 할 때도 챙기고, 특히 세네갈 출신 파페 사르는 영어를 못해 선수들 라커룸에 혼자 떨어져 있을 때 제일 먼저 손흥민이 다가와 말을 건네준 거에 인터뷰 할 때 마다 매번 감동하며 말하고, 지금은 손흥민 애착인형이 되기도 했다. 게다 코치진들 심지어 토트넘 구장에서 일하는 직원들을 만날 때 마다 환한 미소로 인사하며 어려운 일이 있으면 남몰래 기부하고, 암을 앓고 있거나 아픈 남녀노소 팬들의 편지를 받으면 직접 토트넘에 초대해 만나면서 이벤트를 열어 추억을 만들어주고, 또 어려운 영국 지역사회에 무명으로 봉사하고 기여하는 등의 모습들을 보며 축구에 진심인 손흥민 선수의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이 찐하게 전해졌다. 한편으론 저런 마음의 원동력이 지속적으로 어디서 나오나 하는 궁금증도 생기면서 말이다. 사람이 잠시 그리 할 수는 있어도 한결같이 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단순 축구만 잘하는 선수가 아닌, 인간 자체로서 손흥민 선수를 보게 되었다. 특히 그의 솔직한 인터뷰들은 영국기자들도 감동하기에 충분했다.
50대 줌마, 철없는 열정
이쯤 되니 손흥민의 티셔츠가 갖고 싶어졌다. 인터넷으로 구입하면 된다지만, 굳이 영국에서 직접 사온, 이왕이면 그런 티셔츠를 갖고 싶었다. (물론 손흥민의 사인까지 받은 티셔츠라면 넘사벽이다) 하여 영국에 자녀 교육 때문에 가 있는 후배에게 전화해서 한국에 들어올 때 손흥민 티셔츠를 사가지고 오라고 연락했다. 후배는 “아니 어찌된 일이냐며, 내가 맞냐”고 했다. 단숨에 토트넘의 근황을 읊어대니 후배는 내가 축구에 몰입되었음을 감지한 것 같았다. 전화를 끊고 잠시 나도 ‘아니 내가 이럴 줄이야, 내가 이 정도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갖고 싶은걸 어쩌랴.... 심지어 “토트넘 구단에 내가 손흥민 응원편지를 써서 직접 전달할까?” 하니 남편은 ‘애고 철없는 마누라’하는 표정으로 쳐다본다. 아쉽게도 후배가 손흥민 티셔츠를 못 사왔단다. ㅜㅜ
토트넘, 2024~2025 EPL 리그 지금까지 받아보지 못한 순위 17위, 무관의 한(恨) 17년 유로파 리그 우승
토트넘을 응원하며, (솔직히는 손흥민 선수를 응원하면서) 2024~2025년 시즌처럼 최악인 경우가 없었다. 매번 힘들어도 밝은 미소를 짓고 있던 손흥민의 얼굴에서 점차 웃음은 없어지고, 후반에는 부상으로 경기 결장도 되는 등 토트넘 구단의 총체적 난국(2부 리그 강등 우려)을 주장인 손흥민 혼자 감당하며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 시간이었다. 오로지 희망은 2024~2025시즌 유로파 결승전에서 우승트로피를 드는 거였다. 허나 우승이 확실하다기보다 EPL 2부 리그 강등 우려까지 해야 하는 토트넘 상황으로 100% 질 것 같은 의심이 내 온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드디어! 2025년 5월 22일, 스페인 빌바오 맨유와의 유로파 리그 결승, 브레넌 존슨의 한골로 토트넘이 우승컵을 들게 되었다. 야호!!! 나도 손흥민 10년 무관의 저주가 풀어지길 그 누구보다 바랬고, 무엇보다 영국 토트넘에서 10년 축구 인생의 보상이 손흥민 선수에게 주어지길 간절히 원했다. 당연 받을만한 자격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이건 그냥 우승한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이리 오기 위해 기본기 7년, 18세 이후 끊임없는 근력훈련, 손흥민 존(zone) 탄생을 위해 아버지 명을 받들어 왼발 500번, 오른발 500번을 매일 5년 이상 훈련 한 결과이다. 독일, 영국에 10년 이상 있으면서 표현은 안했을지언정 동양인으로 맘의 힘듦을 어찌 말할 수 있으랴~ 손흥민은 토트넘 10년 동안의 희노애락을 모아 모아 우승컵을 들어 올렸으리라~


보고 또 보고
유로파 우승 장면과 그 뒷이야기들을 영상으로 몇 날 며칠을 보고 또 보고 했다. 마치 내가 그 자리에 있는 것처럼, 마음도 설레고, 기쁘고, 울고... ‘아니 자네는 50대 후반의 갱년기 여성인데 왜 이런 일로 그러느냐고, 10대 시절 친구들이 연예인 쫓아다니고 죽을 듯이 좋아하는 모습을 봐도 그저 개 닭 보듯 관심도 없었는데 50대 후반에 웬 주책이냐’고 하며 나의 속사람이 이야기를 건네 왔다.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닷!! 내 방에는 손흥민 선수가 우승컵을 든 기사가 크게 걸려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의 관점에서 손흥민 선수 우승컵을 든 것에 대한 글을 꼭 쓰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우린 손흥민 시대에 살고 있으니까!
손흥민 선수가 토트넘 10년의 시간을 달려오면서 유로파 우승이 확정되자 축구장에 엎드리며 울기까지 엄청난 노력, 훈련, 연습, 자기절제, 자기와의 싸움 등을 얼마나 피나기까지 했을까? 그 이면에는 말할 수 없는 고통이 있었을텐데... 승리는 진심으로 축하하지만, 그저 승리의 달콤한 모습에만 빠질 수는 없지... 손흥민이 내 삶에 들어온 때부터 뒤돌아보며, 60대를 앞둔 나의 인생을 손흥민 선수가 축구에 이리 몰입했듯이 내가 해야 할 정말 가치 있는 일은 무엇인가를 더 고민하게 된다.
서울시 이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