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성품개발을! 시리즈 1-6 열정]

열정

[시로 성품개발을! 1-6   열정]

 

 

어떤 舞姬(무희)의 춤

 

 

  고개 숙여

  악사들 줄을 울리고

 

  자작나무 바람에 휘듯이

  그녀 선율에 몸을 맡긴다

 

  물결 흐르듯이

  춤은 몹시 제약된 동작

 

  “어찌 가려낼 수 있으랴

   舞姬(무희)와 춤을”

 

  白鳥(백조) 나래를 펴는 優雅(우아)

  옥갈아 다듬었느니

 

  맨발로 가시 위를 뛰는 듯

  춤은 아파라

 

  - 피 천 득 (1910-2007) -

 

 

 

 

 

 

  주인공 무희은 서주(序奏)가 떠억하게 제대로 차비된 후에야 드디어 등장하는 법이다. 하지만 결코 자만하지 않고 그 선율에 수동적으로 조용히 몸을 맡기며 따라가며 시작한다. 이윽고 도달하는 곳이 바람에 휘감기며 흔들리는 자작나무숲이구나. 일단 발동이 걸려 본격적으로 오르기 시작한 몸동작은 바람에 이어받아 물결처럼 흐르지만 결코 흐트러지지 않고 최고의 완성점을 향해서 승화하는 중. 드디어 춤과 주인공 무녀가 일체가 되어 동작과 동작자가 구분이 안되는 순간에 도달하다니! 그 우아한 모습은 온 하늘을 덮듯이 쫘악 펼쳐진 백조의 날개와 같구나.

  아뿔사, 바로 그 춤사위는 가시 위를 뛰어다니는 맨발의 피나는 열정적 훈련의 결과였다는 것이 보이는구나. 그 열정적 춤은 간단하게 보는 이에게는 기쁨을 주지만, 주인공 무희의 모든 것에 동참하려고 깊이 바라보는 이에게는 고통도 함께 준다. 연기를 마치며 땀방울을 내리 흘리는 무희가 느낀 것과 동일하게.

 

. . . . .

 

  영혼과 몸이 합일(合一)된 동작을 바라보고 있다. ‘자작나무 바람에 휘듯이’ 거기엔 그 어떤 작위(作爲)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추는 춤이 아니다. ‘몹시 제약된’ 깊은 율(律)의 세계를 바탕으로 하며 그 위에 올라서기 까지는 지난(至難)한 단련의 시간, 제 혼신을 ‘옥같이 갈아 다듬는’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이제 미숙의 번데기를 벗고 날개를 편 예술가의 세계, 그저 선율에 몸을 맡기면 되는, 춤과 춤꾼을 구별할 수 없는 ‘바느질 자국 없는’ 동작을 본다. 춤은 정신과 몸을 일치시키는 예술이다.

  정신과 실천을 일치시킨다는 것, 그것을 세상에서는 ‘지극한 도덕성’ 이라고 부르리라. 그 합일된 삶은 참으로 드물고 드물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러한 사람, 그러한 삶을 만나면 이 시에서 ‘맨발로 가시 위를 뛰는 듯 / 춤은 아파라’ 라고 하듯이 감동의 전율이 전해진다. - 장석남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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