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에서 사라진 고조선의 건국연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사라진 고조선의 건국연대

 

 

올해 국립중앙박물관 선사고대관이 재단장하였습니다. 유물 교체도 있었고, 고구려실에 광개토태왕릉비 탁본도 새로 걸렸습니다. 구석기실은 미국인 병사 그렉보웬이 발견해 발굴된 연천 전곡리 유적지가 매우 강조되었습니다. 그렉보웬의 구석기 발견 모습을 재현한 사진도 걸어놓았죠. 다만 남한에서 최초로 구석기 유적을 발굴한 석장리 유적에 대한 설명이 따로 없는 것이 아쉬운 점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쉬움을 넘어 한 가지 이해할 수 없는 점은 예전 선사고대관 입구에 있었던 ‘한국사연표’가 사라진 것입니다. 한국사연표는 기원전 2,333년 고조선의 건국부터 1948년 대한민국정부수립까지 5천년 한국의 역사를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매우 요긴한 연표였습니다. 더구나 한국 역사를 잘 모르는 외국인이 박물관을 찾을 때 매우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이번에 박물관에서 한국사연표가 사라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마도 고조선의 건국연대 때문으로 생각됩니다. 고조선의 건국연대는 《삼국유사》, 《제왕운기》, 《동국통감》 등에 따르면 기원전 2,333년이라고 합니다. 이 연대는 곰에서 사람이 된 웅녀가 환웅과 결합하여 낳은 단군이 조선이란 나라를 세운 연대입니다. 박물관 측은 기원전 2,333년이 신화 속 연대이기 때문에 ‘유물’을 중시하는 박물관의 성격상 연표에 기재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작년(2024)까지만 해도 한국사연표에 기원전 2,333년 고조선 건국이라고 써놓고 올해(2025)에 한국사연표를 없애면서 자연스럽게 고조선의 건국연대를 삭제한 이유를 납득하기가 어렵습니다. 그 사이 단군신화에 대한 이해에 커다란 변화가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더욱 이해가 안되는 점은 한국사연표가 사라졌다면 ‘고조선실’에서라도 ‘고조선 연표’의 제시와 함께 고조선 건국연대와 중요 역사 사건이 기재되어 있어야 합니다. 박물관은 ‘고구려실’, ‘백제실’ ‘가야실’ ~~ ‘대한제국실’에 이르기까지 각 나라의 연표가 표시되어 있습니다. 연표를 제시했다는 것은 그 나라가 어엿한 나라라는 증표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고조선실’은 ‘부여실’ ‘삼한실’과 동급으로 연표가 기재되어 있지 않습니다.

 

부여와 삼한의 경우 연표는 없지만 부여의 경우 기원전 2세기에 세워졌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이 언제 세워졌는지 현 국립중앙박물관은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기원전 2,333년이 신화 속 연대이기 때문에 실을 수 없다면 가야실의 ‘가야 연표’처럼 《삼국유사》를 인용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42년에 하늘에서 여섯 개의 황금알이 구지봉에 내려왔다고 합니다. 이 알 속에서 여섯 아이가 태어났고, 그중 가장 먼저 태어난 아이를 수로(首露)라고 불렀습니다.

수로는 그 해 왕위에 올라 금관가야를 세웠고, 나머지 다섯 알에서 태어난 아이들도 각각 여러 가야의 왕이 되었다고 합니다. 한편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가야의 산신인 정견모주(正見母主)가 낳은 두 아이가 각각 대가야와 금관가야의 왕이 되었다고 전합니다.(국립중앙박물관 가야실 가야 연표 설명)

 

모든 역사가 유물로 모두 실증되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역사인식’의 문제도 중요합니다. 적어도 한 나라의 국립중앙박물관이라면 그 나라의 가장 오래된 역사서 가운데 하나인 《삼국유사》가 그 나라 첫 번째 나라의 건국을 언급한 부분은 적어도 ‘신화 속 건국연대’라는 단서를 달더라도 제시하는 게 옳다고 생각합니다.

 

 

명협 조경철, 연세대학교 사학과 객원교수

전)한국사상사학회 회장

naraname201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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