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두 파도 속에 삼키어진 천재 음악가 프로코피에프의 자화상 -‘피터와 늑대’(1936)를 들으며 혹시‘제 발로 찾아온 사슴’이라는 이솝우화를 읽어 본적이 있나요? 사냥꾼에게 쫓겨 다급해진 사슴이 자유롭게 숨을 수 있는 산이 아닌, 외양간으로 숨어들었다가 집주인에게 손쉽게 잡혀버린 이야기죠. 외양간의 황소가 빨리 산으로 도망가라고 주의를 주었음에도 여물까지 얻어먹다 시간을 놓쳐 버렸으니, 제 무덤을 판 어리석은 사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은 이 사슴과 같은 불쌍한 신세가 되어버린 한 천재적인 음악가의 작품 하나를 소개하려고 하는데, 바로 소련의 작곡가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Sergei Prokofiev; 1891~1953)의 ‘피터와 늑대’입니다. 자유의 기회를 걷어 찬 프로코피예프 1917년, 기울어져 가던 러시아 제국을 끝장낸 볼셰비키 혁명은 소비에트 정권을 세웠습니다. 러시아 사회 전체를 휩쓴 혁명의 폭풍은 서양음악의 변두리에서 이제는 새로운 음악의 중심으로 자리 잡아 가던 러시아 음악에 있어 엄청난 재난이었습니다. 그 가운데 라흐마니노프와 스트라빈스키와 같이 눈치 빠르게 서방세계로 탈출한 음악가가 있는가 하면, 쇼스타코비치와 같이 소련 안에 남
[농사 커뮤니티 스토리] 스마트 팜부터 베란다 텃밭까지, 씨앗부터 수확까지 농사에 관심 있는 분들 파밍순으로 모이세요! ‘파밍순’의 시작 국제학을 전공하고 서울의 무역협회에서 일을 하다가 농업에 관심이 생겨 충청도의 농업회사로 이직하고 내려 온지 이제 2년차가 되었습니다. 다니는 회사는 종자를 판매하는 농업회사이지만, 파밍순은 회사와 상관없이 농업을 잘 몰라 공부의 필요성을 느끼며 운영해보려고 만든 커뮤니티 계정입니다. 저와 동료 모두 농업에 관심을 가지고 농업회사에 들어왔는데 전공이 아니다보니 배울 것도 많고 공부할 것도 많더라고요. 처음에는 농업인들에게 초점을 맞췄습니다. 농사일이 너무 바쁘니 농사 소식이나 바뀌는 제도 같은 것들을 모르실 것 같아 그날그날 나오는 농사 뉴스나 소식들을 올렸던 것이 시작이었죠. 파밍순의 계정 이름도 문자 그대로‘농사정보’였답니다. 본업이 따로 있기에 틈나는 시간을 쪼개서 운영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대충하는 것은 싫어서 콘텐츠 제작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어요. 주말동안 브레인스토밍 시간도 가지며 콘텐츠를 기획하고, 출퇴근길이나 식사할 때 제철 식단 등에서 영감을 얻기도 해요. 각자 고민한 콘텐츠에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틈날
[눈으로 들은 음악회] 성남아트센터에서 만난 티볼트의 죽음 [궁궁 쾅쿵쾅... 로미오와 마주한 티볼트. 두 사람은 현악기의 긴장감속에 서로를 주시하며 대치하고 있다. 중간중간 관악기의 중저음 속에 서로의 약점을 노리는 치명타를 주고 받는 가운데 두 사람의 결투는 점점 극단으로 치닫는다. 마침내 로미오의 칼끝은 티볼트의 급소를 찌르고 티볼트는 괴로워하며 뒷걸음으로 쓰러지고 만다. 캐플랫 가문은 모두 침통해하며 티볼트의 장례를 거대하게 준비한다. 그리고 몬테규 가문에 선전포고라도 하듯 커다란 무리를 이루어 티볼트를 애도하며 행진을 한다] 프로코피에프Prokofiev(1891~1953)의 ‘로미오와 줄리엣 조곡 제1번’중 ‘티볼트의 죽음’을 듣는 중에 제 눈앞으로 그려본 스토리입니다. 분명 ‘성남시립 교향악단’이 여러 악기들을 이용해 음악을 제 귀에 들려주었지만, 로미오와 줄리엣의 스토리를 알고 있는 저는 주인공들이 마치 제 눈앞에서 공연하는 듯 했습니다. 하나의 아이디어를 더해본다면 ‘티볼트의 죽음’에서 불협화음들을 조금 더 많이 써서 로미오와 티볼트, 이 두 청년의 싸움을 한층 더 심각하게 표현할 수도 있겠다는 겁니다. 그래서 만약 이 음악을 눈으로 보는 발레
가르치는 즐거움을 선사한 10반 꽃봉오리들에게 “어느 순간부터 학교를 옮기면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이 몇 명이나 있나? 그것부터 살피게 되었네.” 나를 아끼던 교장선생님께서 당신의 경험담을 말씀하시며,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승진 준비를 해놓으라고 조언하시던 게 생각나는구나. 더 나이 먹으면 학생들도 꺼릴 뿐만 아니라 학교에서도 부담스러운 존재가 된다는 말씀이셨지. 선생님도 이번에 학교를 옮기면서 이 말씀이 쟁쟁했단다. 나를 반기지 않으면 어쩌나, 익숙하지 않은 업무를 맡아 쩔쩔매면 또 어쩌나, 한걱정이었지. 이십 년만 근무하면 그 다음부터는 ‘덤’이라고 생각했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그에 따라 요구하는 삶의 무게도 보태져 꾸역꾸역 일을 헤쳐나가야 해서, 선뜻 일을 그만둘 수가 없었단다. ‘덤’마저도 더 달라고 보채는 형국이었지. 그리고 너희를 만났다.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알고, 사소한 이야기도 크게 공감하는 너희를 보면서 이것이 하룻밤 꿈이면 어쩌나 밤잠을 설쳤단다. 어느 날은 나보다 더 나이가 많으신 선생님이 부임했다고 하면서 내가 맡은 과목과 업무를 다른 분이 맡아야 하니 내놓으라는 꿈까지 꿨단다. 꿈에서 깨어나자마자 내가 얼마나 너희를 가르치는 일에
소방관의 희생, 그 유가족의 아픔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팀장님, 수동아, 우찬아! 이제 모든 걸 내려놓고 뜨겁지 않은 세상에서 편히 쉬시라…” 지난 1월 8일 경기도 평택시 냉동창고 신축공사장에서 인명 수색을 위해 투입됐다 끝내 돌아오지 못한 송탄소방서 구조대원 3명의 영결식장에서 동료 구조대원이 떨리는 목소리로 고별사를 읽었습니다. 고인들에게는 1계급 특진과 옥조근정훈장이 추서됐습니다. 유해는 대전 국립현충원에 안장되었답니다. 유가족들의 오열과 소방관들의 동료를 잃은 애통함이 영결식장에 참석한 이들에게 깊은 슬픔으로 남았지요. 최근 10년간 화재진압이나 구조·구급 활동 중 순직한 소방관은 총 49명에 이릅니다. 1년에 약 5명이 순직하는 셈이지요. 특히 지난해 6월 쿠팡 물류센터 화재로 소방관 순직사고가 발생한 지 불과 6개월 만에 또 불행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연이은 동료의 순직은 소방관들에게 트라우마의 상처를 덧나게 했답니다. 소방관에게 순직은 어쩌면 소방관에게 희생정신으로 어깨 위에 드리워진 운명 같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미국은 10월 첫 주가 ‘전국 소방관 추모기간’입니다. 대통령 부부가 소방관 유족을 초청해 위로하는
수리산이 나는 좋더라 제가 살고 있는 군포는 크기 면에서 전국에서 가장 작은 시 중에 하나이지요. 이 도시로 14년 전에 이사와 지금까지 살아온 저에게 누군가 “군포는 뭐가 좋아요?”라고 묻는다면 지체 없이 이렇게 말할 거예요. “우리는 수리산이 제일 좋아요”라고요. 사실 어딜 가나 산 밖에 없는 강원도 산골에서 자란 저에게 처음부터 수리산이 그렇게 매력적인 것은 아니었죠. 하지만 도시 생활이 깊어질수록 수리산은 매력을 넘어 저에게 너무나 고마운 존재가 되었습니다. 물론 수리산 속에서 꾸준한 운동(달리기와 자전거)과 등산, 산책을 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도시 아주 가까이서 사람들을 이렇게 넉넉하게 안아주는 산은 드물지 않을까 합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수리산이 왜 좋은지 이야기해야 하는데, 조금 색다른 면을 말해 보려 합니다. 바로 ‘수리산의 어둠’이지요. 새벽어둠_청각과 후각, 공간감의 놀라운 확장 새벽녘 날이 밝아오기 전, 수리산 바로 아래 자리 잡은 납덕골 계곡에 들어찬 어둠을 뚫고 달려보신 적이 있나요? 자전거로도 좋고요. 띄엄띄엄 놓인 가로등 불빛, 그마저도 없는 길을 달리다 보면 청각과 후각이 아주 예민해 집니다. 주변 풍경이 어둠에 지워진 공간속에
더 이상 이방인이 아닌, 너와 나의 이웃으로- 군포이주와 다문화센터 - 경남 김해 ‘장유’, 첫걸음을 내딛다 1996년. 경남 김해시 ‘장유’에서 만난 외국인 근로자들은 대부분 산업연수생이었습니다. 당시는 외국인력 관련법이나 제도, 정책이 수립되기 전이었고, 관련기관들도 거의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연수생이라 한 달 평균 월급이 30만 원대로 매우 적었고, 한국어를 제대로 하지 못해 많은 무시와 차별, 욕설, 폭행 등을 당해도 무조건 참고 견뎌야 했죠. 또 회사를 뛰쳐나오면 불법체류자가 되니 그런 점을 이용해서 착취하는 악덕업자들도 많았습니다. 이러한 주변상황은 이들에 대한 인도주의적 관심을 증폭시키기에 충분했어요. 이후 한국어와 한국문화에 낯선 이들에게 억울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한국인 사장님께 당부하는 일을 시작으로 한국어도 가르쳐주고, 한국문화도 알려주기 시작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관련법이나 정책 및 제도가 건전하게 잘 수립될 수 있도록 대정부활동도 하기 시작했죠. 준비되지 않은 채 갑자기 시작된 다문화 사회 88올림픽 전후로 시작된 건설 붐과 더불어 92년 중국과의 수교가 재개되면서 많은 동포들이 들어왔어요. 국가개발을 위한 인력수급이 필요했던 상황
[바다의 문법이야기 16] 겨울 요트 여행기(1) 코로나19 여파로 전 세계적으로 요트 품귀 현상이 벌어졌다. 요트를 가진 사람들은 갑작스런 재난에 요트에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그고, 요트가 없는 사람들은 집을 팔고 요트에 들어간 탓이다. 함께 쓸만한 요트를 찾아보려 유럽 쪽 딜러들에게 연락을 하던 지인의 전언으로는 유럽 쪽 중개인들도 쓸만한 중고 요트가 없다며 이전보다 1.5배씩 중고 요트 값이 올랐다 한다. 그리고 그나마 국내에 있는 작은 요트 중고 사이트에도 내가 찾는 35~40피트급의 요트들은 씨가 말랐다. 아쉬움에 일본, 미국, 유럽 중고 요트 사이트에 군침을 흘리고 있는데 네이버 검색에 문득 배 한 대가 눈에 들어왔다. 참고로 기점으로 삼고 있는 김포의 아라마리나는 배 길이 40피트 이상의 마스트 높이를 가진 배들이 들어오기 힘들다. 인천을 향하는 두 번째 다리인 아라대교의 높이가 낮아 42피트급 배들이 들어오다가 나침반이 깨지고 마스트가 긁혔다는 이야기들을 다른 선장님들로부터 여럿 들었었다. 지난 가을에 모아나호와 아리엘호를 몰고 상륙정을 배에 싣고 섬에 상륙해 8명의 인원이 캠핑까지 진행했던 대모험에서 크루들을 데리고 아름다운 인천, 경기 지역의
[한현석의 야생초 이야기 3] 복수초 (Adonis amurensis) 긴 겨울밤이 어느 순간 조금씩 짧아지고 저녁 퇴근 시간의 밝기가 조금씩 환해지는 것을 보면 알게 모르게 봄이 우리 곁으로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요즘입니다. 이렇게 봄이 가까이 다가오면 산야에서 꽃 소식이 전해지기 시작합니다. 이때 단골로 등장하는 야생화가 바로 복수초입니다. 복수초는 한자로 이루어진 이름이라 한자를 해석해 보지 않으면 혼란스러운 식물명이기도 합니다. 무술을 가르치던 스승의 원수를 갚기 위해 무림을 떠도는 제자가 먼저 떠오르게 되지만 복수초는 (福:복 복) (壽:목숨 수) (草:풀 초)로 이루어진 이름으로‘장수하라’는 의미를 가진 풀입니다. 성미 급한 복수초는 해가 바뀌기 무섭게 남부지방에 꽃이 피었다는 소식을 전하기도 하는데 꽃이 피는 시기는 주로 2월에서 4월까지입니다. 복수초의 가장 큰 특징이라 한다면 이른 봄에 피는 꽃이면서도 지름이 3~4cm 내외의 큰 꽃이 핀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봄꽃들이 추위로 작은 꽃이 피는 것과 다르게 큰 꽃이 피기 때문에 기온이 낮아지는 저녁이 되면 꽃잎을 닫아 암술과 수술을 보호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나선명의 만평팜 스토리 1] 평창에서 다시 시작된 귀농일기 9년 전, 전남 무안에서 양파농사를 야심차게 지어 본 것이 엊그제처럼 기억납니다. 좌충우돌하며 농사초보가 시작했다 계속 유지하기 어려워 3~4년간 손을 놓고 있었죠. 다른 일을 기웃거려 보기도 했지만, 농사에 대한 미련, 아쉬움이 남아 있었던지 충주와 서산 등 농장에서 일을 하며 농사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러는 차에 일손을 돕기 위해 평창을 방문하게 되었고 작년 지인을 통해 평창에서 제2의 귀농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작물을 할까 고민하던 중에 고랭지 부추 재배 작목반이 막 형성되고 있었기에 마을 지인의 소개로 들어가 함께 배워가며, 공판장에 납품 하면 유통은 신경 쓰지 않을 것 같아 부추재배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모종을 공동으로 키워 옮겨 심을 때도 함께 도와주고 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납니다. 자라는 부추를 볼 때마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을 읊조리며 자세히 보고, 오래보려고 노력하니 예쁘고 사랑스럽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부추 모종을 막 심어 놓자 갑작스런 꽃샘추위가 와서 어린 모종에 살얼음이 오면 어찌해야하나 발을 동동거리며 해결책을 찾아보기도 했죠. 다행히 부추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