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의 화가 ‘리까르도’ 프롤로그 Ricardo Araya Assler. 아쓸러는 독일인 성. 리까르도의 할아버지가 독일 사람이라고 한다. 그의 얼굴을 자세히 뜯어보면 확실히 유럽 스타일이다. 수염이 길 땐, 이미 우리 눈에 길들여질 때로 길들여진 예수상을 닮아 보이기까지 하다. Plaza de Armas 광장 칠레의 Santiago 시내 중심에는 대통령궁이 있고, 두 블럭 옆엔 Plaza de Armas라는 광장이 하나 있다. 이 곳은 술 취한 자, 외로운 자, 노숙자, 독신자, 여행자, 다리 아파 쉬는 자, 멀쩡한 자, 잡상인, 버스커들의 천국이기도 하다. 상설 체스판이 놓여 있으며, 바로 곁에 팔각정 닮은 구조물도 있다. 여기서 작은 공연이 자주 열린다. 가끔은 세계 정상급의 가수들이 날아와 공원뿐만 아니라 인근 주변까지 관중들로 꽉 채운 대공연도 열리는 광장이다. 또한 빼 놓을 수 없는 풍경 하나가 광장의 화가들. 그와의 만남 20년 전, 광장을 지나가다가 발길을 멈추었다. 그러니까 평상시엔 그냥 지나쳤다는 건데 그 이유는 광장의 화가들이 초상화를 그려준다거나 소위 이발소에나 걸려있을 만한 그림 따위를 그려 내게 별 자극을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퍼셀의 주제에 의한 변주곡과 푸가’ 속에 담긴 나와 이웃들의 솔직한 이야기 지난 호에서 다룬 소련의 작곡가 세르게이 프로코피에프(1891~1953)의 ‘피터와 늑대’(1936)가 흥미로운 스토리로 어린이들에게 오케스트라의 악기들을 소개하는 음악이었다고 한다면, 이번에 소개할 영국의 작곡가 벤자민 브리튼(1913~1976)의 작품, ‘청소년을 위한 관현악 입문(The Young Person’s Guide to the Orchestra; 1945), 부제로서 ‘퍼셀의 주제에 의한 변주곡과 푸가’ 역시 제목 그대로 청소년들에게 오케스트라를 소개하는 친절하게 잘 짜여진, 아름답고도 가슴이 웅장해지는 선율을 가진 곡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둘의 또 다른 공통점을 들자면, 혁명과 전쟁의 고통스러운 상황 속에서 음악을 통해 다음 세대를 이어갈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죠. 전자의 작품이 러시아와 주변 국가들을 피로 물들인 소련 공산당 혁명의 폭력적 혁명정신을 아이들에게 계속적으로 주입시키려는(프로코피에프에 의해 어느 정도 저지되었기는 했지만) 섬뜩한 배경을 가지고 있다면, 후자인 벤자민 브리튼의 작품은 영국뿐 아니라 전 세계를 고통스럽게 만든
‘시’에 온 마음을 쏟아내는 시인 김 유 례 부선(扶宣) 김유례(金裕禮) 1940년 4월12일 출생 2003년 경주문예대학 졸업 2007년 문예운동 신인상으로 등단 경주문협, 경북문협 회원, 행단문학 동인 2021년 첫 시집《오늘을 먹다》출간 2019년 문집《여든》출간 신문 연재소설이 나의 첫 문학책 어린 시절 저는 경기도 양평에서 한학을 공부하신 아버지 밑에서 자랐습니다. 교육을 중요시 여기셨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오빠들 세 분도 다 서울로 유학을 가서 공부를 했지만, 집안 분위기가 인문학적인 집안은 아니었어요. 아버지께서 신문을 구독해서 보셨는데 제가 양평 읍내로 학교를 다녀오는 길에 신문을 가져오며 배달부 노릇을 하였지요. 당시 여자 아이들은 초등학교만 보내고 더 이상 교육을 시키지 않았던 때라 혼자 중학교에 다니며 심심했던 저는 학교 갔다 오는 길에 냇가에 앉아 신문을 열심히 읽었어요. 신문에 연재되던 소설이 제가 읽은 첫 문학작품들이었죠. 중학교에서 문예반 활동을 하고 등사지를 밀어 교지도 만들었어요. 그런 경험들이 쌓여 결혼 후에도 책을 읽는 것이 습관이 되었죠. 남편이 회사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다 주면 열심히 읽고 일기도 써보고 했지만 내가 글을
[선에 담긴 당신의 마음 이야기 10] 마음을 알아가는 드로잉 시간 ▲ Photo by Heather McKean on Unsplash 초등학교 때, 친구에게 알록달록 귀여운 지우개를 선물 받은 적이 있어요. 너무 예뻐서 보물 상자에 고이 담아두었죠. 한참을 흐뭇하게 바라봤는데 여섯 달쯤 지났을까요? 조심스레 꺼낸 지우개는 찐득찐득해져 케이스에 붙고 엉망이 돼서 무척 속상했던 기억이 납니다. 지우개를 오랫동안 그대로 두면 녹아내려 버린다는 걸 몰랐던 거죠. 아무리 소중한 것이라도 제대로 들여다보고 알아가지 않으면 온전하게 지켜낼 수 없다는 걸 배웠습니다. 소중하다는 걸 잘 알면서도 제대로 들여다보기 어려운 대상이 있으세요? 어쩌면 그 대상이 ‘나의 마음’은 아니었을까요? 마음을 알아가는 1단계 - 시선 가져오기 작년부터 육아로 힘든 엄마들을 위해 힐링 드로잉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온라인에서 만나 함께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죠. 하지만 저희가 드로잉보다 더 열심히 준비하는 것은 바쁜 일상을 잠시 멈추고 마음에 집중하는 시간을 만들어드리는 일입니다. “오늘은 어떤 아침을 보
작은 것 작은 물방울 작은 모래알 그것이 크나큰 바다가 되고 아름다운 나라가 된다. 작은 ‘때’의 움직임 비록 하찮을지라도 그것은 마침내 영원이라고 하는 위대한 시대가 된다. 조그만 친절 조그만 사랑의 말 그것이 지상을 에덴이 되게 하고 천국과 같게 만든다. 카니(1823~1908)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46호>에 실려 있습니다.
거친 질감 속에 새긴 깊은 삶의 이야기 - 박수근 전시회를 다녀와서 ▲ 1962년, 하드보드에 유채 59.3x121cm 농악 덕수궁 국립현대 미술관에서 열리는 ‘박수근: 봄을 기다리는 나목’ 전시회를 관람하기 위해 토요일 아침 일찍, 서울 나들이를 떠났습니다. 미술관이 위치한 덕수궁 안에는 얼마전까지 세상을 온통 황홀하게 물들였던 단풍의 끝자락이 남아있어, 고즈넉한 고궁의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있었습니다. 아직 이른 시간이었는지 사람들은 많지 않았지만, 하나같이 행복한 얼굴로 늦가을 고궁의 정취를 즐기고 있었죠. 미술관이 열리기 전까지 고궁을 돌아보며, 때마침 전각과 정원에서 무료로 열리는 ‘덕수궁 프로젝트 2021: 상상의 정원’의 전시도 둘러보았습니다. 개관시간이 임박하여 고궁 구석구석을 돌아다니고 싶은 욕망을 뒤로하고 멋진 나무들과 작별인사를 한 뒤, 미술관으로 달려갔습니다. 궁전 서쪽에 우뚝 솟은 지극히 서양적인 석조건물의 미술관은 이질적이면서도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죠. 사전예약으로 빠르게 입장한 미술관 안은 제법 많은 관람객으로 북적이고 있었습니다. 작품들은 1, 2층에 각각 총 4개의 섹션으로 나누어 전시되어 있었는데, ‘밀레를 사랑한 소년’,
간 격 숲을 멀리서 바라보고 있을 때는 몰랐다 나무와 나무가 모여 어깨와 어깨를 대고 숲을 이루는 줄 알았다 나무와 나무 사이 넓거나 좁은 간격이 있다는 걸 생각하지 못했다 벌어질 대로 최대한 벌어진, 한데 붙으면 도저히 안 되는, 기어이 떨어져 서 있어야 하는, 나무와 나무 사이 그 간격과 간격이 모여 울울창창鬱鬱蒼蒼 숲을 이룬다는 것을 산불이 휩쓸고 지나간 숲에 들어가 보고서야 알았다 - 안도현 -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45호>에 실려 있습니다.
화가 리까르도와의 만남, 그림의 고정관념 알에서 깨어나다 그네 타는 후안. 1992. 유화(100x100cm) 지난 8월의 어느 날, 친구이자 화가 Ricardo를 만났다. 리까르도가 그린 그림을 내가 ‘Dibujo’라고 말하는 버릇이 있다며 ‘Pintura’라고 말해야 한다고 여러 번 교정시켜주었다. 그러니까 ‘삔뚜라’는 그림(페인팅, 회화)이고 ‘디부호’는 데생(드로잉, 소묘)이라는거다. 도화지나 천에 선으로 그린 그림이나 수채화 물감, 유화 물감으로 그린 그림을 나는 그동안 ‘Dibujo’(데생)라고 부른 셈이었으니, 교양 떨어지는 인간이 되고만 셈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화가 리까르도는 단호하면서도 끈질기게 자기가 그린 유화들을 내가 ‘디부호’라고 지칭할 때 마다 ‘삔뚜라’라고 부르라며 집요하게 교정시켜주었다는 얘기다. 까다롭게 군다고 빈정 상했다가 정신을 가다듬고 생각을 해보니 일반인이라고 하더라도 전문가나 예술가를 친구로 두려면 적절한 교양을 갖추지 않고서는 관계유지가 되질 않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갖게 되었다. 물론 전에도 비슷한 경험이 한번 있었다. 사진가 박진호씨를 다큐멘터리사진가로 지칭한 적이 있었는데 순수사진예술가라고 불러야 한다고 분명하게
매 발 톱 매발톱이라니? 이런 살벌 망칙한 꽃 이름 같으니라구 근데~~~ 한 색깔만 있는 줄 알았는데… 비웃듯 보라, 자주, 분홍으로 화려함을 뽐낸다 난 화려한 색깔로 변신한 매발톱을 그릴란다 하니 왜? 발톱을 그려요? 성민의 갸우뚱 매. 발. 톱. 그 날카로운 이름으로 세상을 준엄하게 내려다보며 나에게 말을 건네기 때문이지 한 번 피다지는 봄꽃보다 못 한 인간 같으니라구 너는? - 김 하 선 -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52호>에 실려 있습니다
경 포 호 거울 호수 둘레길을 걷는다. 천혜의 아름다움으로 감성을 품고 있는 곳 사임당, 허난설헌의 숨결이 깃 들여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시에 능하고, 글씨도 그림도 빼어났던 조선을 대표하는 여류 화가 사임당 불행한 짧은 생애를 깊은 시심을 토해내며 살아냈던 조선 최고의 시인 허난설헌 둘레길을 걷는 내내 이들과의 대화는 아쉬움을 머금은 채 이어졌고 볼거리 먹거리 넘쳐나는 곳 되어 오늘을 가볍게 살아가는 우리를 돌아보게 한다. - 조현선 -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52호>에 실려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