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강 약골, 드디어 달리기 시작하다 “아이쿠~ 발목아” 출근길 내려가는 지하철 에스컬레이터에서 또 오른쪽 발을 삐끗했다. 이번 발목 부상도 왠지 꽤 오래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저녁이 되니 발목이 퉁퉁 붓고 걸을 때마다 통증이 온다. 회사 근처 단골병원에 들러 X레이 사진을 찍고 진찰을 받았는데 선생님의 표정이 안 좋다. “이번에는 또 어쩌다가 다치셨어요? 자꾸 이렇게 다쳐서 어떡해요.” 발목에 인대가 또 늘어나 당분간 병원에 나와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발목 때문에 9개월 동안이나 도수치료를 받고, 치료를 받는 중간에도 괜찮아졌다가 다시 다치기를 반복하니 도수치료사 선생님도 이런 환자는 처음이라고 할 정도였다. 병원 직원들도 이제는 내가 병원 입구만 들어가도 알아서 접수를 해주었다. 발목 힘을 기르겠다고 산 마사이족 신발, 쿠션이 좋은 운동화, 발목을 잡아주는 운동화, 발목 보호대, 발 마사지기, 힘줄과 연골 강화에 좋은 건강식품 보조제, 염증 치료에 좋다는 강황가루 등 발에 쓴 돈만 해도 몇백만 원은 되었다. 거기다 9개월 동안 받은 도수치료와 병원비 약 값까지 1년간 쓴 돈을 합치면 몇 달치 월급은 훌쩍 넘었다. 원래 발에
5월, 내면의 어린 나에게 선사하는 어린이날 선물 어린이날을 맞이하여 대형마트, 백화점의 장난감 판매대가 수많은 사람으로 북적인다. 엄마 아빠 손을 붙잡고 온 아이들, 손자, 손녀를 데리고 나오신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이모, 삼촌, 고모까지 온 가족이 아이 한 명을 위해 이 하루를 보낸다. 놀이 공원은 이날이 대목이라 각종 행사를 열어 어른들의 지갑을 열게 한다. 놀이 기구 하나 타기 위해 엄청난 줄을 기다려야 하지만 이날만큼은 아이를 위해 수고스러움을 감수한다. 식당마다 어린이들이 좋아할 만한 음식 메뉴를 홍보한다. 아이들에게 인기 있는 식당들은 이른 시간부터 입장하기 쉽지 않다. 입맛 까다로운 할아버지도 손자 손녀의 입맛에 맞춘 음식을 드신다. 흔히 볼 수 있는 어린이가 왕이 되는 이 날의 풍경이다. 아이들에게 어린이날은 갖고 싶은 선물을 받고 맛있는 거 실컷 먹고, 온종일 놀아도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듣지 않을 수 있는 날이다. 옛날과 달리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진 아이들에겐 선물보다 학원가지 않고 자유로이 놀 수 있는 이날이 손꼽아 기다려질 것이다. 불과 한 두 해 전까지 만해도 나 역시 어린이날마다 몸과 마음을 바쳐 아이들에게 봉사했다. 하지만 청소년
버려진 것들의 외침 “장소가 어디라고요?” “장소가 어디라고요?”, “서대문 양지 커피숍입니다.”라는 말에 조금 의아했다. 이제까지는 무대에서 여러 명의 무용수들이 공연 하는 것을 보아왔기 때문이다. 그래, 요즘은 주제에 따라 다양하게 표현하는 예술 분야가 많으니 어떤 장소든 무대가 되겠거니 했지만, 그래도 현대무용이지 않은가? 그런데 이름도 약간은 촌스럽게 여겨지는 ‘양지 커피숍(?)’이라는 말에는 조금 의구심이 가기는 했다. 아무리 넓은 커피숍이라고 해도 무용을 할 만한 무대를 만들기가 쉽지 않을 거라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일단은 내가 이제까지 보아오면서 느꼈던 선입견은 다 버려야겠다는 마음만 가지고 가기로 했다. 초행길이라 헤매며 겨우 간판을 발견했는데, 옛날에 다방커피가 나왔던 그런 느낌이었다. 멋있고 세련된 간판일거라 생각했던 터라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실내는 인테리어를 새로 해서 조금 다르겠지!’라는 기대를 또 하고 말았다. 그런데 기대와는 달리 들어가는 입구부터가 낡을 대로 낡은 지하로 들어가도록 안내를 했다. 계단을 조심스레 내려가다 보니 바닥, 벽은 물론 무대로 쓰일 공간도 마찬가지로 오래전에 사용한 그대로였다. ‘어, 이런 곳에서
조금씩 익어가요 2022년 11월 15일 <충주 문해 한마당> 잔치가 충주시 호암체육관에서 열렸다. 코로나19로 3년 만에 열리는 행사였다. 이날 <충주시 문해 교육 시화전>도 함께 열렸는데 나는 전시된 작품들을 하나하나 읽어가면서 그분들이 보낸 지나간 이야기를 모두 듣는 듯 했다. 딸 아들 눈으로 보던 세상 내 두 눈으로 세상을 보려 하네 지금 너무 즐겁지 아니한가 밝은 세상 한 번 살아보자! 한글을 배우니 즐겁습니다. 배우지 못한 한이 조금은 풀린 것 같습니다 새로운 인생을 사는 것 같습니다 마음이 부자가 된 것 같습니다 하하호호 웃음이 끊이지 않는 충주문화학교 오늘도 같은 반 친구들과 하하호호 정말 재미있다 버스 앞에 쓰인 행선지를 읽을 줄 몰라서 집으로 가는 버스를 낯익은 운전기사 얼굴만 보고 탔는데 다른 곳으로 가는 버스였다면서 눈물을 흘리던 모습, 가방 메고 학교 가는 모습이 제일 부러웠다면서 꼭 책가방 메고 다니시던 모습, 길거리에서 간판을 읽었다고 자랑하시던 모습 등이 작품 위로 떠올라서 남다른 감회와 뿌듯함을 느꼈다. 나는 2000년 8월에 명예퇴직으로 교직 생활을 마감하고 “글을 모르는 분들을 가르치는 곳이 있으니 함께
소원 당겨쓰지 않기 할머니께서 노란 박카스를 병뚜껑에 찰찰 담아 한 모금 주시면 그 맛이 황홀했다. 그러나 밥은 안 먹어도 박카스는 마셔야 하루를 견딘다는 아랫말 어느 과부의 중독 이야기가 소문 난 뒤로 박카스가 무서워졌다. 미래에 필요한 에너지를 당겨쓰다가는 어느 순간 내 발밑의 현재가 끝없이 지연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기도를 할 때면 미래에 얻을 결과를 미리 당겨 달라고 보채는 스스로에 놀란다. 아이들이 무탈하기를, 부모님이 건강하시기를, 사소한 오해로 맘고생하지 않기를, 구설수에 오르지 않기를, 꾸준히 노력하는 자세를 유지하기를, 거기까지라면 괜찮다.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부자가 되기를, 당선이 되기를, 매력을 잃지 않기를! 그런저런 소원을 주워섬기다가 돌연 나의 바람이 과욕이구나 깨닫고 서둘러 멈춘다. 벌충이라도 하듯 평화, 통일, 민주주의, 지구환경을 언급한다. 사적인 소망보다 공적인 소망은 아무리 빌어도 민망하지 않으니까. 2023년이 다가온다. 학생들이 안분지족하면서 친구들과 즐거이 생활하고 점수보다 배움에 관심을 가지고 매 순간 행복하길 바란다는 소망을 빌어본다. 모두가 명문대학에 입학하기를 바란다거나 1등급이 우리 학교 애들만 많이
1년에 한 번만 새해계획을 세우기보다… 일상으로 스며 든 불교 용어 중 ‘돈오’가 있다. 일순간에 깨우침을 얻는 것이라는 원 의미에서 파생되어 갑자기 깨닫는 것을 말한다. 엄밀히 말하면 일순간 깨우치기 위해 자기도 모르는 사이, 시간의 뜸을 들였음을 알게 된다. 많은 곡을 만들어 낸 가수들이 5분 만에 썼다는 그 곡이 실은 평소 공기의 리듬을 듣고 발걸음의 박자에 귀 기울이며 생활 전체에 곡을 만들기 위한 지속적인 관심에서 만들어졌고, 5분은 옮겨 적는데 걸린 시간이라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약속된 시간에 종을 쳐가며 일을 하지 않는 집안일은 돈오하기 딱 좋다. 적당한 집중력이 필요하며 무엇보다 멀티태스킹이 가능하기에 머릿속 회로도 같은 방식으로 작용된다. 쉬지 않고 달려온 사람의 체력이 한풀 꺾이는 마흔 무렵, 주저앉아야 할 만큼 아프고 난 뒤 의도치 않게 진료실에서 은퇴하였고, 그렇게 뒤늦게 가정주부로 입성하였다. 어느 새 사춘기에 접어든 아들 둘을 건사하며 남편과 함께 꾸리는 집안일은 초보티가 나는 좌충우돌 일상이었다. 요리도, 아이들을 챙기는 일도, 초보에서 익숙해지며 주부단수를 쌓아갈 무렵, 하루 종일 드라마와 예능이 TV에서 나오는 걸 보
야구 백배 즐기기 우리를 잠 못 들게 하던 월드컵은 끝났습니다. 이제 야구이야기 좀 해볼까요? 지금부터 20년 전인 2003년, 야구에 전혀 관심이 없었던 제가 잠실야구장의 티켓부스에서 일일 알바를 한 적이 있습니다. 아직 티켓 판매가 시작되기 한참 전부터 티켓부스 밖에는 잠자리채와 뜰채 등 온갖 장비를 갖춘 아저씨들이 줄을 서 있었고, 티켓 예매 시작 후 너도나도 외야석 자리를 예매하려고 난리여서 외야석은 금방 매진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벤트로 외야석에 당첨되어서 온 사람들에게 외야석이 매진이라 티켓값이 조금 더 비싼 내야석으로 티켓을 발권해주었더니 절대 안 된다며 외야석 자리를 달라고 아우성치느라 티켓부스는 도떼기시장 같았습니다. 저는 나중에야 그날 잠실야구장에서의 경기가 이승엽선수가 홈런 신기록을 세울 수도 있는 역사적 현장이었던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KBO의 전설 국민타자 이승엽선수에게도 무관심했던 제가 kt위즈의 팬이 된지도 어언 7년이 흘렀습니다. 2015년, 집 가까운 수원에 kt위즈가 야구를 시작하면서 처음 야구장을 가보았습니다. 경기장에 들어설 때부터 가슴을 들뜨게 만들었던 우렁찬 응원소리가 야구장의 첫인상이었죠. 그런데 3루 응원석에
‘한·일 나의 친구, 나의 이웃을 소개합니다’ 30여 년 전에 일본 동경에서 1년 반을 지낸 적이 있다. 그때도 나에게 길을 묻는 사람들이 간혹 있었다. 내 외모가 일본 본토 사람처럼 보였던 것인지 의심하지 않고 묻길래 당황을 했다. “저는 일본 사람이 아니어서 길을 잘 모릅니다”라고 말하며 뒤로 물러서곤 했었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가끔 일본 사람으로 오해를 받은 적이 있다. “일본 사람인데 한국말을 잘해요?”라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나의 한국말 발음이 서툰 것인지? 진짜로 외모가 일본 사람처럼 생겼는지 모를 일이지만, 그런저런 연유로 일본 사람하고는 친하게 지내야 하는 이유가 많았다. 일본에서 잠시 살았던 인연으로 일본 사람을 만나면 괜히 반가워 먼저 말을 걸기도 하고, 더 친절을 베풀고 싶어지기도 한다. 작년 외교부에서 감사패를 받았다. 2022 ‘한일 나의 친구, 나의 이웃을 소개합니다.’ 공모전에 응모를 했는데 상을 받게 되었다. 공모전 소식을 듣고, 떠오르는 일본 친구들이 많았다. 서울 종로에서 10여 년간 한옥게스트하우스인 유진하우스를 운영해 왔기 때문에, 해외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왔다. 그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을 꼽으라면 단연 일본 사
44세, ‘취업 필살기’ 안녕하세요? 저는 44세 나이로 다시 새롭게 취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학창 시절 막연하게 30세까지 뭐든 열심히 준비하고, 그 이후로는 경험했던 것을 바탕으로 일을 하며 살아가면 되겠지 라고 어렴풋이 생각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정말 좁은 사고였죠. 안정적인 것을 추구하는 저의 성격상 도전하는 일은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런 제가 44세가 되어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으니… 첫 번째 저의 직업은 중국어를 가르치는 일이었습니다. 안정적인 성향을 따라 찾았던 일이었죠. 대학원에서 중국어교육을 전공하고, 그 당시 정부에서 사교육을 공교육으로 흡수하기 위해 예체능을 비롯한 다양한 과목을 학교의 공간과 제반시설을 이용한다는 방과 후 학교 운영 취지에 감명을 받았죠. 졸업 후 근 10년 가까이 초등학교 방과 후 학교, 중학교, 다문화 학교 등에서 중국어 수업을 연구, 개발하며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새로운 수업모델을 개발하며 학생들이 흥미를 가지고 잘 따라오는 모습에 보람되고 재미있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단순히 언어만을 가르치는 것에 한계도 느꼈습니다. 중국어를 열심히 배워 보겠다고 했던 친구가 범죄와
마지막이 남기는 무게감 삶의 기한 장인어른의 소천이 임박했다는 소식에 일손을 중단했다. 나는 현재 아프리카 르완다에서 봉사단원의 신분으로 있으니 특수한 상황을 적용받아서 한국에 다녀오는 수밖에 없다. 부모와의 이별을 경험해 본 적 없는 아내의 음성은 슬픔으로 떨렸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어야 하는 때란 걸 직감하게 만들었다. 월요일쯤에 주치의의 소견서를 받아서 약간의 절차를 밟고 토요일에 출발하는 비행 편을 예약했다. 일주일 안에 심장의 작동이 멈출 것이라는 진단이었다. 그간 심장박동기의 도움을 받아서 팔십 중반을 넘기신 것도 운이라면 큰 행운이었다고 말했다. 이런 소견으로 인해 자녀들이 다시 모이고 있다. 해외에 나가 있던 자식과 사위, 손주며느리까지 속속 입국하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삶이 마무리되는 시간의 자리엔 묵직한 진중함이 흐르고 세상 모든 사람이 공유하는 잔잔한 애도가 깃드는 듯하다. 아직 학기 중이지만 기꺼이 잘 다녀오라고 위로하는 교장과 선생님들 그리고 학생이 있다. 내게 주어진 2주라는 한정된 시간 속에 모든 일이 조화롭고 순적하게 진행될지 알 수 없지만, 오늘 오후면 비행기에 몸을 싣고 지구 반대편을 향해 이동하고 있을 것이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