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도전 이야기] 전기기타에서 전기자전거로 일렉(트릭)기타를 전공한 저는 ‘콘트라베이스’로 잘 알려진 밴드에서 10년 정도 공연을 다녔습니다. 연주하는 즐거움에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녔지요. 하지만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특히 소위 ‘음악매니아’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정말 싫었습니다. 왜냐하면 “세계에서 내노라하는 연주자가 될 것도 아닌데 왜 음악을 하냐”는 등, 먼저 판단해 버리는 말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기 때문입니다. 마치 자신은 전문음악인보다 모든 음악분야를 더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말이지요. 그래서 곤혹스러웠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더 힘들었던 것은 이 밴드와 함께 활동하는 ‘정치인들’에 대한 좋지 않은 경험들이었죠. 결국 저는 10년이나 해왔던 일을 그만두었습니다. 연주를 그만두자 이번에는 음악하는 후배들이 저에게 음악을 가르쳐 달라고 도움을 청했습니다. 그 후배들이 성공하는 모습을 보면서 용기를 얻어 ‘실용음악학원’을 시작했지요. 그러나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여러 가지로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한 학생이 이렇게 말하더군요. “저 곡 안 쓸 거예요, 그리고 칙칙한 발라드 곡을 왜 연주해요?” 가르치는 저의 입장에서는 기
왼손으로 바라보는 세상이야기 예쁜 글씨 쓰고 싶어서!! 이다 나는 악필이다. 어릴 적부터 학창시절 내내 아니 성인이 되어서까지 악필 콤플렉스는 늘 나를 따라다녔다. 어째서 내가 악필이 되었는지는 기억도 나지 않고 잘 모르겠다. 다만 가족들과 친구들 그리고 선생님에게 글씨 못 쓴다는 핀잔과 꾸지람을 끊임없이 들어왔을 뿐이다. 나도 나름대로 애써왔다. 큰마음을 먹고 예쁜 글씨로 교정하는 책을 신청해서 다달이 받아보았다. 하지만 처음 글을 배우고 깨우치는 호기심 가득한 어린아이도 아니고, 혼자서 그 지루한 정자체 글씨를 수없이 반복하며 따라 쓴다는 건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결과는 몇 번 쓰다 말고 마치 다달이 쌓여가는 문제집 같은 책들에 엄마에게 돈만 버렸다는 꾸지람만 수년간 듣게 되었다. 혹 조금이라도 도움 받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서예 교실도 다녔다. 하지만 어찌어찌하여 한글이 아닌 한문반으로 등록하게 되었고 장시간 꾸준한 반복연습이 필요한 지루한 일에 별 성과도 얻지 못하고 그만두게 되었다.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첫인상은 꽤 중요하다. 첫인상이 반드시 사람들과의 지속적인 관계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아니지만 첫인상이 좋으면 한 번 만날 일이 두 번 되고
마흔이 되어서야 겨우 깨달은 행복 나는 별똥별이다. 요즘 내가 쓰는 별칭이다. 작년 말에 어린왕자를 여러 차례 읽은 적이 있다. 그리고는 어느 날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하늘에서 갑자기 뚝! 떨어졌다! 갑자기 떨어진 별과 같다’상상력이 풍부한 어린왕자 이야기를 읽어서였을까 참 엉뚱하지만 딱 나 같은 별똥별이 떠올랐다. 1982년 아주 추운 겨울이다. 입춘이 막 지났으나 아직 봄기운이 느껴지지도 않는 날, 어두운 새벽 1시가 넘어서 큰 달이 뜨는 음력 정월대보름, 대한민국에서 가장 추운 강원도 고한에서 태어났다. 어느 책에선가 우주의 균형이 깨지면서 사람이 탄생한다고, 그래서 모든 사람은 절대 균형에 있지 않다는 글귀를 읽은 적이 있다. 그 글귀를 읽으며 난 어떤 에너지 균형이 깨져 났단 말인가? 추운 겨울의 깜깜함과 크고 밝은 보름달이 대비되는 날을 닮은 나를 그려본다. 강원도 고한은 당시 탄광촌으로 조금 과장하자면 현재로서는 대기업과 같은 탄탄한 국영기업이었다. 사람들은 내가 강원도에서 살았다고 하면 농사짓고 구수한 사투리도 쓰며 얼굴도 햇볕에 그을린 그런 아이로 자랐을 것이라 상상하겠지만, 그렇지 않았다. 대다수가 깨끗한 직원 아파트에서 정시
의외의 장소와 공간이 주는 매력사람을 잇는 장소 도봉산 자락 아래에 위치한 방학중학교를 방문했다. 직사각형의 운동장에 본관 건물과 부속 건물이 ㄷ자 모양으로 세워진 형태다. 노란색의 건물 외경과 구령대의 위치는 예전에 많이 보아서 익숙한 전형적인 학교의 구조였다. 겨울방학 중이라 학생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눈으로 뒤 덮인 운동장과 교사에서 짙은 향수가 풍겨 나왔다. 이곳을 찾은 이유는 도봉구 마을학교 교사들에게 핸드폰으로 영상제작하는 방법을 가르치기 위해서다. 도봉혁신교육지원센터의 연락이 아니었다면 굳이 학교 안으로 들어와 볼 엄두도 못 냈을 곳의 내밀한 공간으로 들어왔다. 강의를 하면서 내가 사는 곳에서 가장 가까이 위치한 공간에서의 수업이었고, 이웃 동네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기대와 공동체에 무언가 이바지할 수 있다는 반가움과 설렘이 교차했다. 지금 사는 노원구와는 서로 맞대어 있고, 어린 시절엔 수유동에 살았으니 도봉구는 늘 고향 같은 느낌이다. 도봉구 수유동에서 강북구 수유동으로 행정이 나뉘는 시간에도 북한산과 도봉산은 서로 이어져 나의 걸음을 맞이해주던 쉼터와 같았다. ‘꿈빛터’라는 건물에서 수업을 진행했다. 학교와 마을을 잇는 공간인 이 건
같이 ‘한옥 밤마실’에 다녀오실래요? ‘한옥 밤마실, 한옥 저자 3인의 북토크’ 서곡 일은 언제나 작은 것에서 시작된다는 말이 진리임을 확인했다. ‘한옥 밤마실, 한옥 저자 3인의 북토크’가 이루어진 것도 마찬가지였다. 《안녕 나의 한옥 집》을 미국에 살면서 출간한 임수진 작가를 만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아니 그전에 임작가의 책을 《Hanok, The Korean House》와 《서촌 홀릭》등을 쓰신 로버트 파우저 박사님께 전달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소피님의 아이디어에서부터 출발 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한옥에 대한 관심이 같으니, 한옥 관련 책은 파우저 박사님도 당연히 좋아하실거라 여겼다고 했다. 두 분이 책으로 서로 인연을 맺고 있었지만 북토크에 대한 이야기가 구체화 된 것은 유진하우스에 임작가가 오면서부터였다. 나는 이미 임작가의 출간 소식을 친구를 통해 듣게 되었고, 한국에 오면 꼭 우리 집에 오기로 미리부터 약속을 해 두었었다. 이번에 서울에 오자마자 우리 집에 온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학창시절 혜화동에서도 오랫동안 살았다고 하니 더 남다른 인연이다 싶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우리 둘이 한옥 관련 책을 썼으니 한옥 북토크를 열면 되겠다
[친환경 동네가게 제로에이블 스토리] ZERO(제로웨이스트) + ABLE(가능하게 하다) ZERO : ABLE덜 만듦으로, 미래를 더하다! 무심결에 쓰던 플라스틱 양에 깜짝 놀라, 시작된 환경에 대한 관심 직업상 가족들과 떨어져 생활하면서 제가 매일 사용하고 버리던 생수병, 즉석음식 1회용 용기들을 보고 문득 ‘나 혼자 쓰는 것도 이정도인데 하루에 버려지는 양은 얼마나 될까?’라는 의문을 가진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마침 그린피스에서, 가정에서 사용하는 플라스틱 종류와 그 양에 대한 조사를 하는 캠페인에 참여할 기회가 생겼죠. 매일매일 사용하는 음료수 병, 햇반 등 모든 플라스틱을 일일이 리스트에 적다 보니 생각보다 사용량이 엄청나다는 것에 깜짝 놀랐습니다. 무심결에 쓰던 플라스틱을 제 자신 스스로 자각하게 된 것이죠. 그때부터 제로웨이스트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환경과 지구관련 공부도 하고 책도 찾아보며, 그렇게 3년을 준비하고 ‘제로에이블’을 시작하였습니다. 제로에이블 안에서 먼저 하나 되기 현재 제로에이블은 저까지 총 5명의 파트너가 함께하고 있습니다. 작년 7월부터 본격적인 매장 오픈을 준비하면서 함께하게 되었죠. 그 과정에서 같은 생각으로 제로에
나는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결혼 후부터 지금까지 15년 동안이나 이사 갈 때마다 싸매고 다녔던 대학교 전공책을 미련 없이 싹 다 버렸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다양한 언어들에 관심이 있어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을 좋아했어요. 하지만 막상 언어를 전공으로 선택하니 잘해야 한다는 부담과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점점 커져 즐겁게 공부하지 못했습니다. 특히 시험에 대한 압박감에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잠도 편히 자지 못하며 피 말리듯 했던 통번역 대학원 시험에 낙방을 하고서는 다시 공부할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의 기대를 무너뜨리고 실망시켰다는 자책감과 다시는 그렇게 힘들게 공부하고 싶지 않은 생각이 강했지만, 그럼에도 마음 한편에는 여전히 미련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결혼과 출산으로 직장을 그만둔 저는 다시 빨리 일을 하고 싶었지만, 도저히 갓난아이를 시댁이나 친정 부모님께 맡길 수 없는 상황이라, 몇 년간 육아에만 전념해야 했습니다. 결혼 초반 남편은 직장에 잘 적응하지 못해 자주 옮겨 저희의 생활은 매우 불안정했어요. 게다가 밤늦게까지 일을 하니 아이를 키우는 것은 오로지 저의 몫이었죠. 새벽마다 깨어 우는 아이를 홀로 달랠 때는 한 번도
《신양반사회》 586, 그들이 말하는 정의란 무엇인가? (김은희, 2022) 한 시대가 가고 새 시대가 도래하는 전환기에, 일단 과거를 정확하고, 정직하게 돌아보는 것이, 아직 윤곽이 드러나지 않은 미래를 조심스럽게 전망함에 있어 아주 중요합니다. 국외적으로 사방이 무시무시한 적들로 둘러싸인 한반도이기 때문에, 어느 민족보다도 국내적 정치 변화에 모든 백성들이,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하거나, 완전히 무관심한 두 가지 극단을 벗어나, 매우 슬기롭게 대응해야 난관들을 헤쳐 나갈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정치변혁은 매 10년마다 일어난다는 공식같은 현상이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는 5년 만에 깨어졌는데, 이것을 어떻게 해석,판단하며 또 어떤 행동을 앞으로 해야 할지 매우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한편으로는 얼마나 못했으면 이렇게 되었을까 싶기도 하고, 또 정반대로 국민들이 성급한 변화를 요구했다고도 판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판단을 내리는 일에 도움을 받을 디딤돌로, 위의 제목으로 갓 나온 따끈따끈한 책(2022년 3월 4일 출간)을 중심으로 다루고자 합니다. 먼저 이 책의 장점(A)을 소개합니다. A.1. 좌파에 속했지만, 가끔 우파와 좌파의 균형추와 같
일, 쉼, 놀이는 건강한 우리의 삶을 위한 삼위일체 ‘생활여가연구소’ 옥성삼 소장 “사람들이 일하고, 쉬고, 놀이하는 것은 각각 독립되어 있는 것 같지만, 우리의 삶은 어느 한가지만으로 이뤄지거나, 한 가지가 없어도 지속 가능하게 계속 유지 될 수 없어요. 일, 쉼, 놀이는 우리의 실제 삶을 이루는 기본요소로 서로 연결되어 상호작용을 합니다. ” 중2, 세상의 모든 짐을 짊어지다 돌이켜보면, 제겐 중2때 세상을 바라보는 뼈대가 거의 만들어진 것 같아요.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할지? 인생을 도덕적으로만 살아야하나? 하나님은 세상을 왜 만드셨지? 무엇을 하며 사는 게 재밌고 바람직할까?… 삶의 근본적인 고민들을 이때 참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아버지가 중3때 뇌종양으로 쓰러져 7년을 누워계시다 소천 하셨습니다.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하나님께 “이럴 수가 있느냐”며 막 따지기도 했습니다. 이런 고민들이 제가 신학을 하게 된 계기이기도 합니다. 하여튼 그렇게 신학교를 갔지만, 그곳에서의 저의 모습은 한마디로 자유로운 영혼이었죠. 3년 정도 하나님께 기도하며 제가 목사가 될 확실한 증표를 달라했습니다. 묵묵부답 이시길래 ‘아~ 이 길이 아니구나’하며 포기했어요.(웃음)
[러시아 문학, 도스또옙스끼 3] 도스또옙스끼, 한국인에게 너무나 어색하지만 꼭 필요한 문학가(3) : 도스또옙스끼 기독교의 한계 2022년에 들어오면서, 전염성은 강하나 독성은 약한 것으로 평가된 오미크론 변이가 전세계적으로 우세종이 되면서, 코로나에 대한 걱정은 전보다 많이 줄어든 것 같습니다. 그것보다 훨씬 긴급하게 우리의 촉각을 곤두세우게 만들며 매일 가장 먼저 찾게 되는 소식은, 우크라이나로의 진격의 방향타를 결정적으로 쥐고 있는 어떤 인물에 대한 것입니다. 그는 러시아 장기집권자로, 러시아 젊은이들 80%의 지지를 받고 있는 블라디미르 뿌띤(1952~)입니다. 러시아와 서구 사이의 지정학적인 외통수 지역과 같은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돈바스에서의 분쟁으로 인한 서유럽-미국과 러시아의 대결구도는 어제 오늘에 형성되어진 것은 아닙니다. 여기에 우리가 더 깊은 관심을 가지는 사항은 다음의 두 가지입니다 : 첫째, 외적으로 뿌띤이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 하는 것보다, 그와 러시아인은 대체로 어떤 정치적 정체성을 가지고 있느냐는 겁니다. 먼저 뿌띤은 1) 뻬떼르부르그에서 갑자기 부자가 된 전직 KGB요원으로, 2) 혼란스러운 러시아의 정치역사에서 보드카 중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