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을 전하는 허브스토리 11] 8월의 허브이야기 페퍼민트 (peppermint)학명:Mentha piperita 페퍼민트의 이름 ‘멘타(Mentha)’는 라틴어 ‘Mentha’에서 파생되었으며 워터민트(watermint, Mentha aquatica)와 스피어민트(spearmint, Mentha spicata)의 교잡종으로 우리나라에서는 ‘박하(薄荷)’로 알려져 있습니다. 페퍼민트는 차가운 맛, 매운 맛이 강한 향신료로 여러해살이인 쌍떡잎식물로 꿀풀과에 해당합니다. 아무렇게나 심어놓아도 제멋대로 쑥쑥 잘 자라나기에 허브 텃밭을 꾸준히 돌볼 자신이 없다면 박하를 심는 것을 추천합니다. 로마의 과학자이자 역사가인 플리니(Pliny)는 ‘민트 향기는 잃었던 기운을 되찾아 줄 수 있다’라는 기록을 남겼으며, 중세 시대에는 소화계 질환 치료에 쓰였고, 인도의 아유르베다에서는 순환계, 소화계, 신경계, 호흡계의 질환 치료에 널리 사용하고 있습니다. 다른 많은 약초와 마찬가지로 고대의 이집트 희랍인 그리고 로마인에게 해독작용이 좋은 허브로 널리 알려지다 보니 연회석에 참석할 때는 이 허브로 만든 관을 쓰고 참석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 허브를 많은 사람이
[한현석의 야생초 이야기 20] 제비동자꽃 (Lychnis wilfordii) 올해 여름과 장마는 대단한 위력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폭염과 폭우는 사람들의 삶을 힘들게 하지만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한여름이면 너나 할 것 없이 더위를 피해 시원한 곳으로 떠나게 됩니다. 몇 해 전만 해도 저 역시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면 더위를 피해 어디론가 떠났지만요. 근래는 사정상 자리를 지키며 더위와 싸움질을 하고 있습니다. 예전 같으면 벌써 북부지역의 고산지역 이름 없는 골짜기를 찾아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높은 산의 야생화들과 눈 맞춤을 하고 있을 것 같은데 이제는 추억으로만 고산지역을 거니는 듯합니다. 무더운 여름 북부 고산지역을 찾아가면 반갑게 맞이하던 여러 종류의 야생화 중에서도 ‘제비동자’ 꽃은 그 화려한 색상과 독특한 꽃 모양으로 발걸음을 멈추게 합니다. 제비동자꽃은 꽃잎이 가늘고 길게 파인 모습이 날렵한 제비의 꼬리처럼 보이기 때문에 이름이 제비동자꽃입니다. 이 품종은 무슨 연유인지 개체수가 급감하여 국가에서 멸종위기 2급 식물로 보호하는 지경이 되었지만 다행히 개체 수는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어 조금은 안심이 됩니다. 더위를 피해 고산지역
아내를 보내며 옆자리가 허전하여 아내를 확인할 량으로 오른손을 뻗었는데 아내가 없었다. 머리를 들어보니 아내가 침대 끝에 걸터앉아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색씨! 위험하게 뭐하는 거야. 화장실 가려면 꼭 나를 깨우라고 그랬잖아!”… 대답이 없었다. 이렇게 올해 5월 27일 토요일 이른 아침 6시 30분에 아내가 죽어있는 것을 본 것이다. “이건 아니잖아~!!!…” 나는 절규했다. 살려보겠다고 코에 기운을 불어 넣어보기도 하고 몸으로 할 수 있는 별의별 몸동작으로 아내를 어루만졌다. 나는 그야말로 지랄발광 상태가 되어 눈앞이 캄캄해지고 말았다. 그녀, ‘이성표’ 한국 나이로 겨우 육십을 채우고 간 아내 이성표는 1964년 말미에 태어났다. 평택에 사시던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맏손녀가 너무 귀엽다고 두 살 때부터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맡아 기르셨다. 할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셔서 결국 할머니가 혼자 도맡아 키우셨다. 할머니가 엄마 역할을 대신한 것이다. 단편소설《소나기》를 쓴 황순원을 존경하여 그가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경희대 국문학과에 들어갔다.(실력으로는 서울대에 들어갈 수 있었는데 연탄가스를 맡은 바람에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없어서 점수가 낮게 나와 경희대
나의 집 집의 변화를 떠올려 본다. 과거에는 다세대 주택에서 살다가 25평 아파트로 이사했고 현재는 32평 아파트에 살고 있으며 미래에는 북 카페를 지으려고 고심 중이다. 과거는 바꿀 수 없으나 미래는 가변적이라 하루에도 몇 번씩 집을 지었다 허물었다 하면서 이리저리 궁리 중이다. 5년 전 북 카페 부지를 살 때만 해도 친구 남편이 나의 추진력을 높이 사면서 이런 말을 했단다. “어떻게 억대가 넘는 땅을 사면서 마치 마트에 가서 두부 한 모 사듯 앞뒤 재지 않고 사지?” 믿을 만한 분이 소개한 땅도 아니고, 오다가다 들른 부동산에서 덜컥 땅을 산 나의 행동은 주변에서 보기에 무모해 보일 정도였다. 광릉수목원과 고모리 호수 근처인데다 이곡초등학교도 가깝고 농협, 마트도 가까이 있어서 의정부에 사는 나로서는 안성맞춤이었다. 우선 땅부터 사 놔야 변덕이 죽 끓듯 조석변개하는 나 자신을 눌러 앉힐 수 있겠단 생각도 한몫했다. 뒤에서 누가 쫓아오는 것처럼 사놓은 땅임에도 북 카페를 짓고자 하는 첫 삽은 쉬이 떠지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인생의 주기를 학령기, 가주기, 임서기, 유랑기로 나눈다면 나는 지금 임서기를 준비 중이다. 유랑이 뼛속에 박힌 성정을 지니고서
"휴가 같은 소리 하고 있네!" 고등학교 시절, 방학이 다가오는 어느 여름날 엄마에게 여름휴가에 대해 물었다. 엄마는 휴가라는 단어가 애초에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알아듣지를 못했다. 그래서 더 자세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재차 물었다. 괜히 물어보았다. 휴가 같은 소리 한다는 핀잔만 들었다. 같은 반 친구 주연이가 강릉으로 여름휴가를 간다면서 나에게 “경혜, 너는 어디 가?” 라고 물은 것이 화근이었다. “글쎄…” 라며 아직 정하지 못했다고 했지만 속으로는 과연 우리가 여름휴가라는 걸 간 적이 있었던가? 생각하게 되었다. 고등학생 나이로 약간의 눈치는 있었던지라 천진난만하게 계속 묻지는 못했다. 그래서 차근차근 말했던 건데 일언지하에 거절당하고 나니 약간 서러운 마음까지 들었다. 하지만 더 조르지는 못했다. 놀러 갈 형편이 아니라는 건 누구보다 잘 알았으니까. 그때 아빠는 농부이면서 목수였다. 농부가 쉴 때는 목수로 일했고, 목수 일이 없을 때는 농사를 지었다. 시간의 빈틈없이 사는 건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엄마는 농부의 아내이자 목수의 아내였으니 바쁘기는 매한가지였다. 그러니 애들 데리고 놀러 갈 틈이 있을 리 없었다. 한 푼이라도 더 모아야 했으니
빠르게 변하는 이 시대∼ 먼저 ‘다양성’을 인정해보자! 주말 아침 느지막하게 일어나 커피를 마시며 지난 한 주 내가 본 공연들 중에서 인상 깊었던 공연을 복기해 보는 시간이 나에게는 가장 즐거운 시간이다. 그 가운데 기억에 남는 공연의 제목은 <만병통치약>. 제목만 들어도 속이 시원해지는 공연이었다. 출연자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무용가 안은미 씨와 젊은 소리꾼 서도가 함께 꾸미는 무대였다. 오프닝은 옛날 가수 신 카나리아 씨가 부른 ‘나는 열일곱’이라는 노래를 안은미씨가 립싱크로 부르며 시작되었다. “나는 가슴이 울렁거려요. 당신만 아세요. 열일곱 살이에요…” 객석을 채우고 있는 관객은 20대부터 60대 까지 다양했는데 일부 나이 드신 관객들은 따라 부르기도 하며 공연을 즐겼다. 그 후엔 서도밴드의 리드싱어 서도가 드랙 퀸 복장을 하고 나와서 80~90년대 유행했던 가요를 그의 창법으로 불렀고 안은미 무용단의 젊은 무용수들이 객석에서 관객들과 함께 춤을 추며 공연이 무르익었다. 생각해 보니 드랙을 소재로 한 콘텐츠들을 나는 꽤 많이 보아왔다. 뮤지컬 <킹키부츠>, <헤드윅>, 영화 <more or less>, 웹툰
[동남아 일주 요트 여행기] 랑카위에서 사바섬까지 #1 여행을 위해 오랜만에 여권을 열어보니 2020년 필리핀 세일링 이후의 출입국 도장이 보이지 않는다. 3년만의 해외 요트 트립인데 마음은 해외여행 특유의 설레는 느낌이 별로 들지 않는다. 유럽에서 50피트 배를 사서 이송 중인, 홀로 인도양을 건너며 여러 어려움을 겪었을 김선장을 위한 정신적, 물질적 응원의 목적이 첫 번째. 아직 장거리 해외 요트 트립 경험이 없는 요트 클럽의 안선장, 조선장에게 장거리 요트 트립의 경험을 주는 것이 두 번째. 개인적으로 적도 근방의 낮은 위도권의 뜨거운 바다에서 세일링 경험을 갖는 것이 세 번째 이번 트립의 이유 정도 될 것 같다. 안선장, 조선장 모두 연구원이자 회사원으로 시간을 쪼개 쓰며 바쁜 일상을 지내고 있는 한국인들이라 20일 가까운 시간 동안 짬을 내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그래도 지난 몇 년간 여러 요트 모험들로 손발을 함께 맞추고 있는‘찐’크루들이라 함께 하는 여정이 기대된다. 20kg을 넘지 않게 가방에 꾹꾹!! 쿠알라룸푸르 비행기 출국 이틀 전. 짐을 준비하는데 우리가 비행기에 가져갈 수 있는 물품은 인당 20킬로, 세 명이 60킬로가 제한이다. 이고
사람이 되어 ‘미니밤호박’과 함께 떠난 2023년 첫 봄, 여름 여행 미국 뉴욕에서 7년을 살다가 한국으로 돌아와 농사를 짓겠다고 했을 때 친환경농사 경력이 20년 넘은 지인이 한 말이 기억납니다. “정말 농사를 지을 겁니까?” “농사를 지으려면 먼저 사람이 되야만 합니다.”^^ “귀농하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가진 농사에 대한 고상한 철학이나 가치, 꿈은 잠시 접어두고 먼저 사람이 되세요.” 1년이 넘게 지난 이제야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몸소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2022년 한 해 동안 지인의 15만평 농장에서 땀 흘렸던 시간은 말 그대로 사람이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농사 지을 수 있는 체력이 있는 사람, 농업경영을 할 수 있는 사람, 외국인 인부들을 관리할 수 있는 사람, 작물들의 생리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 해뜨기 전에 밭둑에 서 있고, 다음 날 다시 그 자리에 서 있을 수 있는 사람, 미생물, 벌레, 토양, 물, 햇빛, 바람, 대자연의 섭리 속에 한 점 같은 존재임을 아는 사람. 그렇게 땅을 이해하고 하늘에 기대는 법을 배워가는 시간들을 지나 2023년 봄에는 드디어 홀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습니다. 동네 사람들의 염려와 걱정 가득한 시선을 한 몸에 받
[곽명숙 명장의 카빙스토리 6] 역사의 도시 ‘부여’, 푸드카빙의 뿌리를 내리다! 충남 부여의 가족행복센터에 수박카빙 자격증 시험 심사를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이제는 자체적으로 교육 및 자격검정시험을 진행하고 있는 부여의 푸드카빙은, 2년 전 재취업을 준비하는 15명의 여성을 대상으로 일주일에 3~4일 동안 약 3개월간 실시했었습니다. 그래서 매주 월요일에 부여로 내려와 3일 동안 교육을 하고 목요일에 돌아가는 일정으로 부여 3일 살이를 시작했습니다. 부여에서의 수업을 마치면 논산 농업기술센터 수박카빙 수업을 하고, 다시 부여의 숙소에서 잠을 자고 다음 날을 맞이했죠. 숙소는 교육장과 5분 거리로 문을 열면 논과 밭이 보이는 자연 속의 펜션으로 맹꽁이와 풀벌레 소리가 바쁜 일정 속에 휴가를 얻은 것 같은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도록 해 주었습니다. 부여의 수업은 아침 9시 30분에 시작해 오후 2시 경에 수업이 끝나는 일정으로 여느 수업과 마찬가지로 첫 시작은 인사나누기입니다. 저를 포함한 참여한 사람들 모두 처음 보는 날이라, 서먹한 분위기에서 서로 알아가는 시간은 꼭 필요합니다. 본 과정을 어떻게 신청하게 되었고, 과정이 끝나면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또
직장 상사의 끝판왕“울 이사님” 코로나 펜데믹이 끝나고 엔데믹이 되었지만, 일상의 많은 것들은 여전히 변해있습니다. 물가 상승과 개인과 나라의 부채 상승, 코로나 이후 구조조정으로 빈 책상만 남은 사무실 등… 코로나가 시작된 2019년 12월 이후부터 회사의 매출은 급격하게 감소하기 시작했습니다. 컴퓨터 주변기기와 핸드폰 액세서리를 오프라인 매장에 납품하는 것을 주력으로 하는 우리 회사는 그야말로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납품하던 오프라인 매장 50곳이 폐점하였고, 코로나 이후 매장 방문 손님이 줄어 매출은 급락을 하였지요. 온라인 판매 매출이 조금 늘기는 했지만, 전체 운영자금을 감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해 오프라인 매장, 본사, 지점 직원 포함 전체 직원의 70%를 줄이는 극단적인 구조조정을 감행해야 했습니다. 회사의 사정이 이렇게까지 악화되자 회사에서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이사님마저 자진 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사님의 퇴사 소식에 회사 내부뿐 아니라 거래처 사람들도 무척 아쉬워했습니다. 매일 아침 출근하여 하루 종일 함께 시간과 공간을 사용했던 동료들이 떠나고, 빈 책상이 남은 것을 보는 것은 고통스럽기도 했습니다. 같이 머리를 맞대고 회의를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