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문법이야기 18] 겨울 요트 여행기3 우여곡절을 겪으며 위도항에 있는 엘사호에 도착했다. 출발을 위해 배의 상태를 점검하는데 이틀 전 불어 닥친 강풍으로 펜더들이 여럿 깨져 있고 풍향계도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 예전 모아나호를 통영에서 가져올 때 이동 하루 전에 불어 닥친 태풍으로 제노아가 갈기갈기 찢어졌던 일들이 떠올랐다. 요트가 어촌의 임시 폰툰에 묶여 고생을 많이 한 듯하다. 전 선주와 필요한 서류들을 마무리하니 오전 10시가 훌쩍 넘어간다. 이제 운항이 가능한 시간은 7시간 남짓. 바삐 움직여 연료와 물 등을 확인하고 바로 배를 출발시켰다. 어항을 벗어나니 파도가 심상치 않다. 전날 풍랑주의보의 여파가 남았는지 파도가 1.5미터에서 2미터 가까이 올라오며 배가 밀려 오뚜기처럼 기우뚱거린다. 출항에 설레여하던 크루들의 표정을 살피니 벌써 멀미가 올라온 것이 보인다. 하나 둘 콕핏에서 버티던 크루들이 선실로 들어가 그대로 뻗어버렸다. 오토파일럿이 고장 나 직접 휠을 잡고 배를 움직여야 하는 상황. 다행히 태평양을 함께 했던 강릉의 명물 헤밍웨이호 김명기 선장이 함께해 둘이 합을 맞춰 교대로 배를 조종한다. 예전에 필리핀 수빅을 향하던 마지막 밤
[바다의 문법이야기 20]‘Per Aspera Ad Astra (역경을 넘어 별에 이르도록)’ 겨울 요트 여행기 (5) 새벽 5시, 배를 묶어둔 낚싯배에 인기척이 들려 잠을 깼다. 항구 안에는 아직 12월의 어둠이 가득, 미명도 느껴지지 않는다. 옆 낚싯배가 곧 출항을 할 것 같아 황급히 크루들을 깨우고 줄을 풀러 후진으로 요트를 뺐다. 깨자마자 잠옷도 갈아입지 못한 채 두꺼운 파카 하나만 걸치고 작은 항 안에서 출항하는 새벽 배들을 이리저리 피하며 요트를 조종했다. 안크루는 서둘러 기름을 넣고 조크루는 출항 준비와 함께 간단한 아침을 준비한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동이 트고 앞이 보여 드디어 출발이 가능하다. 모항항 입구 쪽에 암초가 있어서 암초를 피해 우회전 한 뒤 거리를 줄이려 섬에 붙어 전진한다. 파도는 어제보다 많이 줄어 마음이 편한데 물때가 문제다. 엔진을 3천 RPM까지 밀었는데 속도가 3.8노트. 2노트 가량의 조류가 배 전진 방향의 반대로 빠져나가고 있다. 이 속도로 가다가는 해가 질 때까지 목표하는 서해 갑문에 도착하기는 글렀다. 바람마저 정면에서 불어 세일도 쓸 수 없다. 이럴 땐 물때가 바뀔 때까지 인내하는 수밖에. 예측을 보니 정오쯤
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 선장을 하며 여러 사람들을 만나 살아온 이야기들을 주고 받다보면, 인생 목표가 ‘선장님처럼’ 사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간혹 듣는다. 며칠 전 20대 친구들 여럿이 배에 놀러 와 이런저런 바다와 항해 이야기를 듣더니‘부러운 삶’이라고 지금 나의 삶을 간단히 정의해 주었다. 곁들여 친구들은 배를 어떻게 타게 되었는지, 배가 얼마쯤 하는지 등 배를 몰며 그간 수백 번 들은 그 질문들을 다시 던진다. 요트에서 세일을 펴고 바람을 누비며 사진을 찍는 선장의 겉모습만을 읽다보면, 두 직업을 가지고 먼 지방으로 유학을 온 딸아이를 돌보며 교육비, 생활비 벌이를 고민하는 가장의 고민이 잘 보이지 않을 수 있겠다. 그런 질문을 받으면 으레 답하는 말이 있다. “인생이 짧아요. 우리 의지 밖으로 태어난 우리가 떠날 때는 언제, 어떻게 떠날지 몰라요. 그러니 내일 말고 오늘, 지금, 하고 싶은 일을 하세요.” 몇 년 전 담낭염으로 전신마취를 하고 3일쯤 병원에 누워 있을 때, 산통에 비견되는 고통과 그로 인한 병원 생활, 일상의 붕괴 속에서 삶에 당연한 것은 없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붓다가 말한 ‘모든 것은 변한다.’는 말의 뜻을, 솔
[동남아 일주 요트 여행기] 랑카위에서 사바섬까지 #2 랑카위 공항에서 비행기에 내리니 탁 트인 평원과 특유의 더운 훈기가 이곳이 남쪽 섬임을 알려준다. 이 공항의 느낌을 어디서 느꼈었더라? 생각해 보니 4년 전 필리핀 팔라완 코론 섬 공항에서 보고 느꼈던 그 풍경들과 비슷하다. 이고 지고 온 짐을 다시 이고 지고 택시를 잡는데 한국 생활에 익숙한 크루들이 짐이 많아 택시가 실어주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 하는 걱정을 한다. “걱정마, 이곳은 한국이 아니야, 기사들이 어떻게든 실어주고 가니까 염려 붙들어 매셔!” 국산 소형차보다 좀 더 큰 택시를 그랩 앱으로 불렀다. 트렁크에 큰 가방 세 개가 가까스로 실리고 남은 짐들은 안고 탄다. 현지 시간으로 8시. 아직 선셋 후의 노을빛이 길게 남아 30분이 넘는 시간을 이동하며 랑카위를 ‘주마간산’(走馬看山) 으로 둘러본다. 평범한 남도 섬인데 차량들은 작은 일제 차들이 많고 도로가 깨끗하다. 중간중간 큰 마트들이 보이고 곳곳에 marine 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간판들이 여럿 보인다. KFC, 맥도날드, 스타벅스, 나이키 등 익숙한 다국적 간판들이 보이고 마리나에 가까워질수록 시골에서 점점 도회지 분위기로 바뀌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