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문법이야기 17] 겨울 요트 여행기(2) 크루들과 테스트로 요트를 몰아 바다를 나가는데 생각보다 속도가 잘 나오지 않는다. 엔진을 쓰는 기주만으로 4.2노트(시속 8km/h)정도. 배 바닥을 살피려 아래 고프로를 들이대니 바닥에 붙은 물풀, 따개비와 이물질들이 저항을 만들어 배의 속도를 늦추고 있다. 돌아와 선장님께 배에 대해 관찰한 내용들을 말씀 드리고 막배로 위도를 나왔다. 돌아오는 길 크루들과 배를 본 소감들을 나누며 마음을 정했다. ‘이 배를 사서 서해를 누비자.’ 마음을 먹은 이상 지체할 이유가 없었다. 12월 초에서 1월로 요트 딜리버리가 넘어가게 되면 한겨울에 배를 옮기기 쉽지 않다. 해가 짧아져 하루에 배를 안전하게 옮길 수 있는 시간은 아침 7시부터 5시까지 10시간 남짓. 시간당 5노트를 평균으로 잡으면 50마일, 약 100km 정도 운항이 가능하다. 먼 거리 항해가 불가능하고 겨울 내내 바닷바람의 추위를 견뎌야 한다. 날씨를 보니 12월 20일부터 21일까지 위도의 낮 기온이 10~13도를 가리킨다. 물때는 대사리 때라 연중 가장 물살이 빠른 때. 물때가 안 맞으면 역류를 만날 경우 속도가 나질 않아 자칫 위험한 변수가 될 수 있
[바다의 문법이야기 18] 겨울 요트 여행기3 우여곡절을 겪으며 위도항에 있는 엘사호에 도착했다. 출발을 위해 배의 상태를 점검하는데 이틀 전 불어 닥친 강풍으로 펜더들이 여럿 깨져 있고 풍향계도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 예전 모아나호를 통영에서 가져올 때 이동 하루 전에 불어 닥친 태풍으로 제노아가 갈기갈기 찢어졌던 일들이 떠올랐다. 요트가 어촌의 임시 폰툰에 묶여 고생을 많이 한 듯하다. 전 선주와 필요한 서류들을 마무리하니 오전 10시가 훌쩍 넘어간다. 이제 운항이 가능한 시간은 7시간 남짓. 바삐 움직여 연료와 물 등을 확인하고 바로 배를 출발시켰다. 어항을 벗어나니 파도가 심상치 않다. 전날 풍랑주의보의 여파가 남았는지 파도가 1.5미터에서 2미터 가까이 올라오며 배가 밀려 오뚜기처럼 기우뚱거린다. 출항에 설레여하던 크루들의 표정을 살피니 벌써 멀미가 올라온 것이 보인다. 하나 둘 콕핏에서 버티던 크루들이 선실로 들어가 그대로 뻗어버렸다. 오토파일럿이 고장 나 직접 휠을 잡고 배를 움직여야 하는 상황. 다행히 태평양을 함께 했던 강릉의 명물 헤밍웨이호 김명기 선장이 함께해 둘이 합을 맞춰 교대로 배를 조종한다. 예전에 필리핀 수빅을 향하던 마지막 밤
[바다의 문법이야기 20]‘Per Aspera Ad Astra (역경을 넘어 별에 이르도록)’ 겨울 요트 여행기 (5) 새벽 5시, 배를 묶어둔 낚싯배에 인기척이 들려 잠을 깼다. 항구 안에는 아직 12월의 어둠이 가득, 미명도 느껴지지 않는다. 옆 낚싯배가 곧 출항을 할 것 같아 황급히 크루들을 깨우고 줄을 풀러 후진으로 요트를 뺐다. 깨자마자 잠옷도 갈아입지 못한 채 두꺼운 파카 하나만 걸치고 작은 항 안에서 출항하는 새벽 배들을 이리저리 피하며 요트를 조종했다. 안크루는 서둘러 기름을 넣고 조크루는 출항 준비와 함께 간단한 아침을 준비한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동이 트고 앞이 보여 드디어 출발이 가능하다. 모항항 입구 쪽에 암초가 있어서 암초를 피해 우회전 한 뒤 거리를 줄이려 섬에 붙어 전진한다. 파도는 어제보다 많이 줄어 마음이 편한데 물때가 문제다. 엔진을 3천 RPM까지 밀었는데 속도가 3.8노트. 2노트 가량의 조류가 배 전진 방향의 반대로 빠져나가고 있다. 이 속도로 가다가는 해가 질 때까지 목표하는 서해 갑문에 도착하기는 글렀다. 바람마저 정면에서 불어 세일도 쓸 수 없다. 이럴 땐 물때가 바뀔 때까지 인내하는 수밖에. 예측을 보니 정오쯤
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 선장을 하며 여러 사람들을 만나 살아온 이야기들을 주고 받다보면, 인생 목표가 ‘선장님처럼’ 사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간혹 듣는다. 며칠 전 20대 친구들 여럿이 배에 놀러 와 이런저런 바다와 항해 이야기를 듣더니‘부러운 삶’이라고 지금 나의 삶을 간단히 정의해 주었다. 곁들여 친구들은 배를 어떻게 타게 되었는지, 배가 얼마쯤 하는지 등 배를 몰며 그간 수백 번 들은 그 질문들을 다시 던진다. 요트에서 세일을 펴고 바람을 누비며 사진을 찍는 선장의 겉모습만을 읽다보면, 두 직업을 가지고 먼 지방으로 유학을 온 딸아이를 돌보며 교육비, 생활비 벌이를 고민하는 가장의 고민이 잘 보이지 않을 수 있겠다. 그런 질문을 받으면 으레 답하는 말이 있다. “인생이 짧아요. 우리 의지 밖으로 태어난 우리가 떠날 때는 언제, 어떻게 떠날지 몰라요. 그러니 내일 말고 오늘, 지금, 하고 싶은 일을 하세요.” 몇 년 전 담낭염으로 전신마취를 하고 3일쯤 병원에 누워 있을 때, 산통에 비견되는 고통과 그로 인한 병원 생활, 일상의 붕괴 속에서 삶에 당연한 것은 없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붓다가 말한 ‘모든 것은 변한다.’는 말의 뜻을, 솔
몰디브에서 모히또 한 잔 할까? 오래 가까이 지내온 형이 있다. 나의 20대 때부터 허물없이 도심과 숲 속에서 함께 지내고, 20여 년 전에는 말을 타고 서울에서 목포, 제주까지 국토 종주를 하는 최초의 도전을 함께 성공했다. 5년 전에는 28피트 요트를 타고 일본에서 한국으로 현해탄을 함께 건너고, 3년 전에는 요트를 타고 필리핀을 함께 가기도 했다. 두 편의 에세이집을 낸 작가이자 방송에도 여러 번 출연했던, 엔지니어링 사업가이자 승마 종주 전문가였던 그는 요트 선장이 되어 새로운 모험을 떠났다. 2월 중순부터 50피트 요트를 타고 아내와 두 돌이 안 된 어린 딸 아이, 셋이서 유라시아 서쪽 끝에서 동쪽 끝으로 유럽에서 인도, 동남아를 거쳐 한국에 오는 요트 여행을 떠난 것이다. 아드리안 해와 아라비아 해, 인도양을 건너는 긴 여행이다. 이 글이 지면에 실릴 때쯤이면 그는 수에즈 운하 쯤을 도달했을 것이다. 결혼 전 프로포즈 콘서트, 결혼식, 등단을 하던 시상식 등 내 인생의 중요한 시간들과 위의 큰 모험들을 빠짐없이 함께 하다 보니 으레 이번 일주에도 나는 자동 참가(?)가 되어버렸다. 최소 4개월 여를 가야 하는 긴 여정이라 구간을 다 참가할 순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