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는 가장 마지막에 먹는다 얼마 전, 개봉한 영화 <모가디슈>는 대한민국이 UN가입을 위해 동분서주하던 1991년 소말리아의 수도 모가디슈의 내전을 다루고 있습니다. 내전을 피해 탈출 비행기를 타기 위해 남측과 북측의 대사관이 협력하여 위기를 극복한다는 내용입니다. 개봉하자마자 방콕에 지친 사람들을 영화관으로 이끌어 올해 들어 처음 관객 200만을 돌파한 영화이기도 합니다. 이 영화와 비슷한 상황이 2021년 현실에서도 나타났는데 바로 ‘미군의 아프간 철수’입니다. 얼마 안되어 아프간 내 최후의 미군 병력이 긴박하게 철수하는 장면을 뉴스에서 보았습니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발표한 철군 시각에 맞춰 수송기 다섯 대에 나누어 떠나는 미군 병력 500~600명을 취재한 뉴스였습니다. 사뭇 전쟁을 방불케 하는 긴박한 장면들을 통해 현지의 혼돈과 급박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시간과 공간이 허용하는 한 최대한 많은 기밀 서류들, 장비 등을 싣고 가져갈 수 없는 무기와 장비는 철저히 파괴하여 탈레반이 활용하지 못하도록 해야 하는 숨 가쁜 상황이었고, 준비된 수송기가 이륙하면 더 이상 아프가니스탄을 빠져나오는 교통편은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미 국
[손미정의 문화·예술 뒷이야기 1] ‘누구나’ 즐기는 예술 공연 예술계에 최근 자주 들리는 용어 중에 베리어 프리(barrier free)라는 말이 있다. 베리어 프리란 고령자나 장애인들도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물리적·제도적 장벽을 허물자는 운동을 말한다. 예술이란 원래 누구나 즐기고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나이나 신체적인 장애로 박탈당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이다. 그래서인지 문화예술계엔 장애인을 위해 베리어 프리를 표방하는 공연, 전시가 늘어나고 있다. 국립 현대무용단의 어린이 대상 무용 공연의 경우 시각장애인을 위한 무용 낭독공연이 있다. 이 연극은 마치 구연동화처럼 무용극의 한 장면을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말로 묘사해주는 공연이다. 이미 이 연극을 미리 봤던 나는 일부러 시각장애인용 낭독공연을 보았다. 낭독자의 디렉션에 따라 눈을 감고 낭독에 따라 온전히 상상력을 동원해가며 장면을 그려보는데 평소와 다른 방법으로 공연 보는 그 시간이 참 신선했다. 공연 보는 방법이 달라지니 상상력이 극대화 되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이제껏 눈으로 보던 익숙한 세상이 새로운 차원에서 열린 느낌이랄까. 시적인 표현으로 무용수의 동작을 듣는 것은 눈
박수칠 때 떠나는 용기 테니스에서 한 해 동안 세계 메이저 대회에서 모두 우승하는 것을 ‘캘린더 그랜드슬램’이라고 한다. 세계랭킹 1위인 노박 조코비치는 지난 9월에 열린 US오픈 한 번만 이기면 ‘캘린더 그랜드슬램’을 달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20대의 패기로 똘똘 뭉친 랭킹 2위 매드베데프와의 경기는 쉽지 않았다. 메드베데프의 강력한 서브와 스트로크에 밀려 두 세트를 내리 지고 끌려가고 있었다. 조코비치는 세 번째 세트도 5대 2까지 벌어졌다. 이후 가까스로 두 게임을 연거푸 이겨 5대 4까지 쫓아가고 있었다. 팬들의 열화같은 환호를 들으며 벤치에 앉아 잠시 휴식을 갖던 조코비치는 땀을 닦던 수건으로 얼굴을 감싼 채 엉엉 울었다. 왜 울지? 역전할 수도 있는 순간인데, 이길 수도 있는데… 사람들은 힘없이 무너지는 황제를 지켜보는 것이 안타까운 듯 했다. 결국 조코비치는 세 번째 세트를 내주고 ‘캘린더 그랜드슬램’ 달성에 실패했다. 나는 그날 경기의 결과보다 더 강렬하게 남아있던 조코비치의 눈물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조코비치가 수건에 얼굴을 파묻고 통곡하던 모습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조코비치의 눈물은 어떤 의미였을까? 조코비치는 그 순간이 바로 자신
[retrospective & prospective 35] 지금은 완벽한 계획보다 실행을 해야 할 때 매일 아침 뉴스는 여전히 전날 코로나 확진자의 숫자로 시작합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코로나로 꽁꽁 묶여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확실히 분위기가 서서히 바뀌고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백신 접종률이 70%가 넘으면 우리도 유럽처럼 ‘위드 코로나’를 선포하여 추락하고 있는 경제를 다시 살리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고, 내년 5월 대선을 위해 각 당에서는 대표주자들을 선발하는 것에 모든 에너지를 모으고 있는 듯합니다. 아마도 내년쯤이면 우리는 독감 백신 맞듯이 코로나 백신을 맞게 될 것이고, 코로나도 여타의 다른 바이러스들처럼 다스릴 수 있는 질병으로 분류될 것입니다. 사회생활이나 개인 생활의 변화 측면에서 보자면 변화 속도가 느렸던 과거에는 조금 먼 미래라도 잘 예측하여 계획하면 얼마든지 새로운 환경과 상황에 대처할 수 있었지요. 그리고 계획을 철저히 잘 세우는 사람이 식견 있고 혜안 있는 사람처럼 대우받았었습니다. 왜냐하면 다가오지 않을 미래를 준비하는 것은 잘 짜여 진 계획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미래 자체가 불확실하고 불투명
[손미정의 문화·예술 뒷이야기 5] 클래식 최초의 불법복제 곡은? 휴일엔 밀린 전시를 몰아보기도 하지만 사놓고 미처 못 읽은 책을 읽거나 한가롭게 집에서 보고 싶었던 콘텐츠를 몰아보기도 한다. 며칠 전, 전 세계에서 넷플릭스 1위를 기록하며 인기몰이를 했었던 ‘지금 우리 학교는’을 보았다. 평소 좀비물을 선호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시리즈가 왜 인기였는지 궁금해서 뒤늦게라도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리즈 중간쯤에 귀에 익은 음악이 흘러나왔다. 생존자들이 좀비들을 음악실로 유인하려고 음악을 트는 장면이었는데 이때 나온 음악이 바로 오늘 소개해 드릴 곡이다. 대부분의 클래식 음악이 그렇듯이 종교음악에 기원이 있는 곡인데 기독교에서 예수가 고난을 받고 돌아가신 성 금요일에만 불리는 ‘미제레레 메이 데우스(Miserere mei, Deus)’라는 곡이다. 이 곡은 1638년 교황청 소속 작곡가 그레고리오 알레그리가 시편 51편에 곡을 붙인 것으로 그 뜻은 ‘주님,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이다. 지금도 ‘미제레레’는 화려한 궁정 음악이나 정교회 음악과는 차별화된 곡으로 성가곡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9성에서 12성 합창으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선
어느 봄날의 컬쳐 로드 살다 보면 때로는 서글퍼질 때가 있다. 내가 전엔 이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씁쓸한 기분을 느낄 때가 있다. 그때는 바로 스스로 감정이 메말랐다고 느낄 때이다. 꿈 많던 학창 시절을 지나 사회인으로 살아간 세월이 길수록, 일상이 너무 바빠서 멍 때릴 시간도 없이 나를 마주할 시간도 없이 지낸 시간이 많을수록 그런 기분을 느낀다. 열심히 산다고 살았는데 문득 돌아보면 나 자신을 잃고 살았다고 느낄 때, 분명히 어떤 상황에서 기쁘거나 슬프거나 확실한 감정을 느꼈으면 하는데… 심드렁한 나를 발견할 때, 그때는 잠시 나를 돌봐야 하는 때다. 모든 일정을 멈추고 내 감정이 말랑말랑하게 살아나도록 자신을 보살펴야 하는 때다. 모처럼 약속이 없는 주말, 평상시와는 다르게 약간의 늦잠을 자고 일어나 창밖을 보니 나뭇가지가 가볍게 흔들리고 하늘은 파랗다. 조금은 바삭해진 나의 감성을 촉촉하게 해줄 수 있는 공연 <스노우 맨>을 보러 마곡에 있는 LG아트센터 서울에 가려고 한다. 공연 시작까지 시간이 남아 있다면 바로 옆에 있는 서울식물원에 들러서 도심의 여유를 느껴도 좋다. 아직은 나무들이 아름드리까지 자라진 않았지만 계획적으로 조성된 신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