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월한 리더십의 이순신이 당대 동아시아 질서에 미친 영향을 평가해 보다 한국 영화 최고 흥행작인 <명량>의 뒤를 이어, <한산>의 인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힘든 코로나 시기에도 불구하고 관객 인원이 8월 말 700만을 넘었다고 하니, 두 작품의 주인공인‘이순신’을 한국인들이 얼마나 선망하고 좋아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지난 추석 연휴를 이용해 방문한 남해안 일대는 과장을 조금 섞어 말하자면, 이순신 장군이 먹여 살리고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습니다. 곳곳마다 경쟁적으로 이순신 장군과 관련된 유적지와 컨텐츠, 문화 상품을 만들어 놓았기에 이순신 공화국처럼 여겨졌습니다. 이렇게 인기 있는 이순신은 우리 민족 누구에게 물어봐도 존경하는 인물이 분명합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냄비근성과 자기만족만을 자극하는 단순한 ‘국뽕’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평가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내부가 아닌, 임진왜란과 관련된 두 국가 일본, 중국의 평가와 세계 속 대표적인 두 해양국가의 눈에 비친 이순신의 평가를 살펴보겠습니다. 그리고 난 뒤 우리 자신의 평가가 정당했는지를 돌아보고 마지막으로 동아시아의 국제정치질서라는 좀 더 큰 차원에서 이
세계최초의 해양탐사선 챌린저호의 가치에 대한 재평가 영국은 막강한 해군력으로 해상 패권국가가 되었습니다. 바다를 운명으로 생각했을 정도로 바다에 대한 깊은 관심과 끊임없는 연구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전 세계 해양 패권과 무역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강한 힘과 함께 기술력과 정보력이 필요했습니다. 이를 위해서 해양 탐사를 최초로 시작한 나라가 영국입니다. 17세기 이후, 항해술의 발달로 바다에 관한 본격적인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1868년에는 톰슨과 런던대학 교수인 카펜터가 해저300m 보다 깊은 바다의 해양 생물채집과 해저 생태계 연구에 큰 공헌을 했습니다. 이후로 해양 생물의 연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었고 이러한 연구 성과의 기초위에 챌린저호의 탐사가 시작 되었습니다. 이 탐사로 해양학의 기초를 다지게 되었는데, 그 최초의 해양탐사선이 HMS 챌린저호입니다. A. 해양 연구의 기초 1) 영국인 최초 프랜시스 드레이크경(Sir Francis Draco, 1540~1596)의 세계일주 해적, 군인, 탐험가로서 영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세계일주에 성공했습니다. 물론 그보다 훨씬 전에 포르투갈 출신의 페르디난드 마젤란(Ferdinand Magellan, 148
[대륙문화에 대한 해양문화의 비판에 대한 비판] 감사합니다. 시진핑 국가주석님! 'Thank you, Mr. Xi!’ 브렛 스티븐스(Bret Stephens) 뉴욕타임스 2022년 10월 20일 친애하는 시진핑 주석님 (도입) 당신이 중국공산당의 주석으로 세 번째로 임명된 것에 대해 내 나라가 보내는 감사와 축하를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것이 아직 명확하지는 않지만, 당신이 하는 통치가 어떤 날인가는 다른 자유국가들을 비롯한 미국의 역사에 예상치 못했던 거대한 축복의 하나로 인식될 것이라고 우리는 믿습니다. 그런데 몇 가지 예외를 제외한다면, 이것은 당신이 10년 전에 처음으로 최고지도자가 되었을 때에 우리가 일반적으로 기대하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본론) 그 때(2013)로 되돌아가 보면, 중국이 고대에서 세계를 주도하던 문화와 가장 거대한 경제를 회복할 것은 단지 시간문제일 뿐이라고 서방의 많은 사람들은 결론 내렸습니다. 매년 10%를 자주 넘겼던 중국의 놀라운 경제성장률은 우리(서방)가 이룬 보잘 것 없는 발전을 그늘에 가리우고 말았습니다. 한 산업에서 다른 산업을 - 정보통신, 은행, SNS, 부동산 - 막론하고, 중국회사들은 산업계의 리더가 되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