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이방인이 아닌, 너와 나의 이웃으로- 군포이주와 다문화센터 - 경남 김해 ‘장유’, 첫걸음을 내딛다 1996년. 경남 김해시 ‘장유’에서 만난 외국인 근로자들은 대부분 산업연수생이었습니다. 당시는 외국인력 관련법이나 제도, 정책이 수립되기 전이었고, 관련기관들도 거의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연수생이라 한 달 평균 월급이 30만 원대로 매우 적었고, 한국어를 제대로 하지 못해 많은 무시와 차별, 욕설, 폭행 등을 당해도 무조건 참고 견뎌야 했죠. 또 회사를 뛰쳐나오면 불법체류자가 되니 그런 점을 이용해서 착취하는 악덕업자들도 많았습니다. 이러한 주변상황은 이들에 대한 인도주의적 관심을 증폭시키기에 충분했어요. 이후 한국어와 한국문화에 낯선 이들에게 억울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한국인 사장님께 당부하는 일을 시작으로 한국어도 가르쳐주고, 한국문화도 알려주기 시작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관련법이나 정책 및 제도가 건전하게 잘 수립될 수 있도록 대정부활동도 하기 시작했죠. 준비되지 않은 채 갑자기 시작된 다문화 사회 88올림픽 전후로 시작된 건설 붐과 더불어 92년 중국과의 수교가 재개되면서 많은 동포들이 들어왔어요. 국가개발을 위한 인력수급이 필요했던 상황
미국 버지니아 주 여름학교, 갈아 넣은 영혼의 무게 6주간의 여름 한글학교 교사 급구 광고를 보고 여름학교에 합류한 것이 6월 초였다. 이제는 어느 자리에서건 직업인으로의 내 나이가 약점이 된다. 경력과 노련함이라는 포장지로도 감당이 안 될 때 나의 선택은 부지런함이다. 일주일에 한 번 하던 토요 한글학교와는 또 다른 집중력이 요구되는 여름학교다. 교회의 시설을 이용하다 보니 여러 가지 제약이 따른다. 지금 나에겐 한국어를 가르칠 수 있다는 공간과 시간만이 허락되면 감사할 일이다. 누구보다 먼저 출근부에 사인을 하고 복사기를 독점한다. 오전 8시 20분이면 학교에 도착한 나와 출근 1, 2위를 다투는 또 다른 선생님과 은근한 순위 경쟁을 하는 즐거움이 있다. 고요만이 머무는 빈 교실에서 감사, 그저 감사의 기도를 한다. “써니 샘이 작성한 지도안이 제일 잘했다고, 항상 교감 샘이 얘기하세요.” 한국에서 교사를 했던 짬밥 운운했지만 속삭이는 교장 선생님의 칭찬에 또 다른 감사 기도를 보탠다. 사랑받고 있는 소중한 마음이 식기 전에 아이들에게 얼른 전하고 싶다. 한 명 한 명의 이름과 얼굴을 연결한다. 내 아이도 이리 사랑스럽지 않았다. 단점도 귀여운 실수로 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