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과 인간, 그리고 디자인 1] 집안의 미생물 디자인하기(1) 저는 현재 인테리어 시공 현장에서 일하고 있으며, 마을 중심으로 ‘공유지의 희극’ 과 ‘빛-생각 반짝’ 프로젝트를 실행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에밀리 앤시스의《The Great Indoors》(한국어 제목: 우리는 실내형 인간)라는 책 내용을 중심으로 공간과 인간의 관계, 그리고 그 속에서의 디자인의 역할을 다루어 보고자 합니다. 인간은 ‘실내 종’ 코로나19로 자동차 보험사들이 활짝 웃을 만큼 집에만 콕 박혀 머물러 생활하는 이른바 ‘집콕’이 많아졌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 때문이 아니라도, 북미와 유럽 사람은 90%가 넘는 시간을 실내에서 보내고 있으며, 제한된 옥외공간과는 달리 실내공간은 점점 더 확장되어 2017년 유엔의 한 보고서에 따르면 앞으로 40년 사이에 전 세계적으로 실내공간 면적이 두 배가 될 것이라고 추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매년 일본의 바닥 면적만큼이 새로 만들어지는 것과 같은 엄청난 확장입니다. 바야흐로 인간은 명실상부한 실내형 종이 되어 가고 있으며, 실내공간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이 그 어느 때보다 크다 할 수 있습니다. 거대한 실내 생태계 속의 인간 그런데 집콕의
엄마의 언어! 한국어 입문 ~~ 일본인 아빠와 한국인 엄마 사이에 태어난 저는 ‘나나에’라고 합니다. 요즘 엄마의 언어인 한국어를 배우고 있습니다. 물론 어렸을 때부터 배웠으면 더 좋았겠죠. 엄마는 제가 다른 아이들에 비해 뒤쳐질까봐 어렸을 때부터 한국어보다는 피아노와 영어를 가르쳤어요. 가끔 들리는 엄마의 한국어가 궁금하기도 했지만, 중학교에 입학해서 영어에 더 집중하느라 한국어 공부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고등학교 입시에 반영하는 동아리 활동으로 한국어 공부를 할 엄두도 못 내었어요. 가끔 방학 때, 한국을 방문할 때면 외할아버지께서 “늘 한국어도 공부해야 한다”하셨는데 고1이 된 지금에서야 한국어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최근 언어를 번역해 주는 프로그램들도 나왔지만, 한국어로 말하는 엄마의 ‘빨리’라는 뉘앙스가 도대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무엇보다 제가 스무 살이 되면 국적을 선택해야 하는데 한국으로 정하고 싶고, 앞으로 전공에 있어서도 국제교류관련 일을 해보고 싶어 더 늦기 전에 한국어를 배우려 합니다. 물론 지금도 학교생활 스케줄은 매우 빡빡합니다. 일본의 학교생활은 보통 새벽5시30분에 일어나 등교 준비를 하고, 7시에는 전철을 타고 이
[일본 교토국제고 야구부 집중 탐방기] 꼭! 일본고교 야구 정상에 서리라! 지난 6월호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에 ‘교토 국제고’에 대해 소개 한 적이 있습니다. 이번호에는 전국고시엔 대회 4강, 교토전체지역에서 1등을 한 교토 국제고 야구부에 대해 교장선생님, 감독님, 야구부 주장을 집중 인터뷰 해보았습니다. 전국 여름 고시엔 대회 4강, 교토전체 지역에서 1등을 했는데 감독님을 비롯해, 각각 야구부원들의 소감이 남다를 것 같습니다. 먼저 감독님은 현재 성적의 가장 중요한 요인이 뭐라 생각하나요? 선수 모두가 ‘일본 정상에 서겠다’라는 정신력이 지금의 성적을 만들어낸 것 같습니다. 최초로 출전했던 봄 고시엔 대회 2차전에서 진 경험이 아이들을 자극했던 것 같아요. 첫 출전에 있어 부담감도 있었을 텐데 아쉽게 패배하자 학생들 한명 한명이 이번 여름 고시엔에서는 꼭 승리하리라는 다짐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말로만이 아닌 실제 결과로 나왔습니다. 훈련에 있어서는 지금까지 해온 반복훈련, 전략과 전술로 진행했고, 다른 것이 하나 있다면 바로 ‘정신무장’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야구부원을 대표해 이러한 승리에 대해 야구부 주장은 어떤가요? 첫
[조경철의 한국사칼럼 27] 무령왕릉 진묘수, “너를 천년동안 지켜줄게” 백제는 흔히 ‘잃어버린 왕국’이라고 합니다. 잃어버린 게 많아서인지, 잊은 게 많아서인지, 빼앗긴 게 많아서인지 모르겠지만, 700년 역사에서 남아있는 것이 별로 많지 않습니다. 아마 일제강점기 상당 부분 도굴 또는 도굴에 가까운 발굴로 상처를 입었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령왕릉은 구사일생으로 도굴되지 않았습니다. 1971년 발굴됐으니 올해로 벌써 발굴 50주년이네요. 무령왕릉이 도굴되지 않은 건 일종의 행운이었습니다. 일제강점기 발굴(도굴)자의 착각 덕분이었지요. 가루베 지온(1897~1970)은 송산리 고분들을 발굴하면서 무령왕릉을 능이 아닌 언덕으로 생각했습니다. 1971년 여름 어느 날, 긴 장마에 대비하여 송산리 고분의 배수로를 만들던 중 땅을 파던 삽 끝에 무언가 걸렸습니다. 아래를 파보니 그곳에는 한 번도 손대지 않은 원형 그대로의 무령왕릉이 있었습니다. 무령왕릉 안에는 능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 있는 지석(땅속에 묻는 비석)을 비롯해 수없이 많은 유물이 들어있었습니다. 무령왕릉의 입구는 벽돌로 막혀있었는데, 벽돌을 허물자 안개인 듯, 수증기인 듯한 기운이 뿜
내 인생의 방향키를 돌고 돌리며… 얼마 전 100세 시대 관련 책을 읽다가 자신의 인생을 적어보라는 문구에 한번 정리를 해야지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때마침 이렇게 일본에서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와 인터뷰를 하게 되니 제 인생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네요. 일본에 대한 관심 어렸을 때, 친척 중 할머니 한 분이 일본에 살고 계셨습니다. 일본에서 온 선물을 받곤 기뻐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막연했지만 일본에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또 터울 있는 큰 오빠가 여행사에서 사진사로 근무하는 것을 보며, 나도 대학가면 일본어를 전공해 여행사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전문 학원을 다니며 일본 관광통역안내사 자격증을 취득했습니다. 그 당시(1982년)만 해도 일본에 대한 시선이 좋지 않아, 일본어를 공부하는 사람에 대한 시선도 따가웠던지라 책을 보이지 않게 커버를 씌워 들고 다녔던 기억이 납니다. 또한 지금처럼 미디어 자료도 많지 않아, 일본 영화를 접하기 위해 일본문화원에 가기도 했습니다. ‘이 사람 혹시 간첩 아닌가?’ 남편을 만나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한국중소기업의 금속기술 연구소에서 일본과의 기술협력을 위한 번역, 통역 업무를 했어요. 하지만 적
탁월한 리더십의 이순신이 당대 동아시아 질서에 미친 영향을 평가해 보다 한국 영화 최고 흥행작인 <명량>의 뒤를 이어, <한산>의 인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힘든 코로나 시기에도 불구하고 관객 인원이 8월 말 700만을 넘었다고 하니, 두 작품의 주인공인‘이순신’을 한국인들이 얼마나 선망하고 좋아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지난 추석 연휴를 이용해 방문한 남해안 일대는 과장을 조금 섞어 말하자면, 이순신 장군이 먹여 살리고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습니다. 곳곳마다 경쟁적으로 이순신 장군과 관련된 유적지와 컨텐츠, 문화 상품을 만들어 놓았기에 이순신 공화국처럼 여겨졌습니다. 이렇게 인기 있는 이순신은 우리 민족 누구에게 물어봐도 존경하는 인물이 분명합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냄비근성과 자기만족만을 자극하는 단순한 ‘국뽕’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평가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내부가 아닌, 임진왜란과 관련된 두 국가 일본, 중국의 평가와 세계 속 대표적인 두 해양국가의 눈에 비친 이순신의 평가를 살펴보겠습니다. 그리고 난 뒤 우리 자신의 평가가 정당했는지를 돌아보고 마지막으로 동아시아의 국제정치질서라는 좀 더 큰 차원에서 이
[조경철의 한국사칼럼 36] 왜 일본은 우리를 무시하는가? 요즘 한일 관계가 뜨겁습니다. 위안부, 징용, 독도 등등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뜨겁긴 한데 우리가 일방적으로 당하는 모양새입니다. 최근 일본은 초등학교 교과서에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서술했습니다. 엄연히 독도는 대한민국의 영토인데 이웃나라 일본이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그것도 초등학교에 교과서에 실었으니 말입니다. 일본의 초등학생들이 커서 어른이 된다면 독도를 ‘무력’으로라도 빼앗아야 한다고 주장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이웃나라가 우리 땅을 자기 땅이라고 주장한다면 이는 이웃나라를 철저히 무시하는 행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왜일까요. 어디서부터 잘못된 일일까요. 역사를 한 번 되돌아보고자 합니다. 우리나라 5천 년 역사에서 가장 치욕적인 사건은 무엇일까요? 일본과의 싸움인 임진왜란이라고도 하고, 청나라에 굴복한 병자호란이라고도 하겠지만 압도적인 대답은 역시 일본에게 36년간 나라를 빼앗긴 것이라고 여길 것입니다. 5천 년 역사를 이어가다보면 이런저런 역사적 사건들이 일어나기 마련입니다. 임진왜란처럼 방심하여 왕이 나라 끝 의주까지
흰색셔츠 검정바지 일본 출근복 후드티 청바지 한국 출근복 사이에 낀 나!! 일본 도쿄에서 4년 정도 근무하고 2022년 9월말 한국으로 돌아와 한국 IT회사에 다시 출근한지 벌써 4개월이 되어 갑니다. 그런데 저도 모르게 업무를 하면서 한국과 일본을 자주 비교하게 됩니다. 먼저 출근 할 때의 모습, 도쿄에서의 출근 지하철은 조용하고 사람들이 자신의 백팩을 앞쪽으로 매면서까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았는데, 한국에서는 사람들을 밀치는 것은 물론, 가방으로 치기도 하니 당황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한국에서의 출근 첫 날, 저를 더 당황케 만들었던 것은 바로 제 자신의 출근 복장이었습니다. 전 일본인처럼 ‘검정바지에 흰색셔츠’를 입고 출근했습니다. 그나마 변화를 준다고 구두가 아닌 단화를 신고 갔는데 저만 우울한 사람처럼 입고 온 겁니다. 더구나 제 직업이 IT관련업무여서 더 그렇게 느꼈을지 모르겠지만, 다른 직원들은 너무 편한 옷을 입고 있었죠. 후드티에 청바지 혹은 면티에 면바지는 마치 집에서 마실 나온 듯 자유로운 복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저도 일본으로 가기 전 한국에서 직장을 다닐 때는 이렇게 입었던 것 같습니다. 일본에서 청바지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