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 무진에는 안개가 명물이듯 파주에는 노을이 명물이다. 야간자율학습이 고되어도 저녁을 일찍 먹고 운동장에서 바라보는 장엄한 노을은 가없는 위로였다. 하늘 가득 불타오르는 가운데 잿빛구름마저 노을 덕분에 불씨를 품은 듯 발갛던 그 하늘! 스탠드에 앉아 김초희 시인의 ‘사랑굿’을 읽고 친구와 흠모하던 선생님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노을을 사랑하기 시작하고 여행지에서는 늘 낙조시간을 기다렸다. 파리에 가서도 마찬가지였다. 개선문에 올라 에펠탑, 라데팡스로 이어지는 방사선 거리를 바라보았다. 아직 밤에 시간을 넘기기 전 황금빛으로 따스하게 얼굴을 비추던 노을! 달팽이 계단을 끝없이 올라 마침내 마주한 광경! 누군가는 기다리기 지쳐 벽에 낙서도 해놨다. 놀이동산 한편에 누구누구 왔다가다를 빽빽하게 써놓듯, 이곳에서도 그렇다. 그리고 한글도 보인다. 낙서는 본능인가보다. 미얀마 우베인 다리의 노을도 떠오른다. 서쪽만 붉은 것이 아니라 온 세상이 붉었던 하늘. 저 멀리 아이들은 염소와 노닐고 우리는 벤치에 앉아 맥주를 기울였다. 이 하나를 위해 양곤, 인레, 만달레이를 거쳐 찾아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제주 ‘백약이오름’의 노을도 생각난다. 분화구 가장자리의 억새와
[동남아 일주 요트 여행기] 랑카위에서 사바섬까지 #1 여행을 위해 오랜만에 여권을 열어보니 2020년 필리핀 세일링 이후의 출입국 도장이 보이지 않는다. 3년만의 해외 요트 트립인데 마음은 해외여행 특유의 설레는 느낌이 별로 들지 않는다. 유럽에서 50피트 배를 사서 이송 중인, 홀로 인도양을 건너며 여러 어려움을 겪었을 김선장을 위한 정신적, 물질적 응원의 목적이 첫 번째. 아직 장거리 해외 요트 트립 경험이 없는 요트 클럽의 안선장, 조선장에게 장거리 요트 트립의 경험을 주는 것이 두 번째. 개인적으로 적도 근방의 낮은 위도권의 뜨거운 바다에서 세일링 경험을 갖는 것이 세 번째 이번 트립의 이유 정도 될 것 같다. 안선장, 조선장 모두 연구원이자 회사원으로 시간을 쪼개 쓰며 바쁜 일상을 지내고 있는 한국인들이라 20일 가까운 시간 동안 짬을 내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그래도 지난 몇 년간 여러 요트 모험들로 손발을 함께 맞추고 있는‘찐’크루들이라 함께 하는 여정이 기대된다. 20kg을 넘지 않게 가방에 꾹꾹!! 쿠알라룸푸르 비행기 출국 이틀 전. 짐을 준비하는데 우리가 비행기에 가져갈 수 있는 물품은 인당 20킬로, 세 명이 60킬로가 제한이다. 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