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다시 쓰는 일기장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시골집에 혼자 계시던 친정 엄마는 2018년 봄에 뇌출혈로 쓰러지셨습니다.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 다음 날 아침에 발견되었습니다. 왼쪽 편마비가 왔습니다. 저는 그 당시 뉴욕에 있었습니다. 엄마는 종합병원에서 거의 1년을 치료하고 재활하셨고, 동생 집에서 6개월을 생활하다가 요양병원으로 모시게 되었습니다. 엄마랑 전화 통화할 때마다 “집에 가고 싶다. 누가 나를 집에 데려다 주면 좋겠다. 나를 여기서 나가게 해다오”라고 하셨습니다. 엄마의 부탁은 시간이 지날수록 간절함에서 애원으로, 절규로 변했습니다. 2021년 7월! 7년 만에 우리 가족은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을 것만 같았던 한국, 고향 땅이었습니다. 과거를 허물다 오자마자 가장 먼저 100년이 된 시골 흙집, 내가 태어나고 자란 집을 부수고 고쳤습니다. 오래 묵은 짐들을 버리고 정리하는데만 무더운 여름 내내 한 달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휠체어가 다닐 수 있는 구조, 엄마가 생활하시기에 더 안락한 환경의 집을 지었습니다. 엄마의 현실을 대면하다 요양병원의 복잡한 퇴원 절차를 거쳐 엄마를 집으로 모시고 왔습니다. 엄마의 재활에 대해
빠르게 변하는 이 시대∼ 먼저 ‘다양성’을 인정해보자! 주말 아침 느지막하게 일어나 커피를 마시며 지난 한 주 내가 본 공연들 중에서 인상 깊었던 공연을 복기해 보는 시간이 나에게는 가장 즐거운 시간이다. 그 가운데 기억에 남는 공연의 제목은 <만병통치약>. 제목만 들어도 속이 시원해지는 공연이었다. 출연자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무용가 안은미 씨와 젊은 소리꾼 서도가 함께 꾸미는 무대였다. 오프닝은 옛날 가수 신 카나리아 씨가 부른 ‘나는 열일곱’이라는 노래를 안은미씨가 립싱크로 부르며 시작되었다. “나는 가슴이 울렁거려요. 당신만 아세요. 열일곱 살이에요…” 객석을 채우고 있는 관객은 20대부터 60대 까지 다양했는데 일부 나이 드신 관객들은 따라 부르기도 하며 공연을 즐겼다. 그 후엔 서도밴드의 리드싱어 서도가 드랙 퀸 복장을 하고 나와서 80~90년대 유행했던 가요를 그의 창법으로 불렀고 안은미 무용단의 젊은 무용수들이 객석에서 관객들과 함께 춤을 추며 공연이 무르익었다. 생각해 보니 드랙을 소재로 한 콘텐츠들을 나는 꽤 많이 보아왔다. 뮤지컬 <킹키부츠>, <헤드윅>, 영화 <more or less>, 웹툰
24년 만에 개봉한이삿짐 속 추억의 공유 결국은 스타벅스에 앉아 추억에 젖다 변두리에 있는 집에서 시내 쪽으로 전철로 30분 가면 ‘싼 호아낀’역이 있다. 중간에 갈아타기 때문이지 실제로는 전철로 20분거리다. ‘San Joaquin’ 역에서 내리면 동쪽으로 카톨릭대학교가 있다. 정계진출을 하려면 반드시 필수적으로 나와야 한다는 칠레대학교가 명실공히 칠레 최고의 공립대학이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사립 카톨릭대학교가 칠레대학교를 앞지르고 있다.(칠레에도 명문대학교의 순위가 있다) 카톨릭대학교의 정문 바로 맞은편엔 스타벅스가 있다. 칠레라는 나라는 확신하건데 의외로 건전한 내가 재밌게 지낼만한 꺼리가 없다. 고작 우리 동네의 염소까페 아니면 던킨도넛츠점, 아님 30분 떨어져 있는 스타벅스… 스타벅스의 커피 Americano 작은 사이즈의 값은 3800페소다. 칠레의 시간당 최저임금은 한국의 최저임금의 3분의 1이기에 3800페소의 세배인 11400페소인 셈이다.(한국 돈으로 굳이 환산하자면 17100원) 이런 고급 커피숍이 카톨릭대학교 맞은편에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카톨릭대학교의 위용, 그러니까 칠레의 빈부와 경제 전반에 걸친 사회구조를 쉽게 짐작할 수 있는
[동남아 일주 요트 여행기] 랑카위에서 사바섬까지 #1 여행을 위해 오랜만에 여권을 열어보니 2020년 필리핀 세일링 이후의 출입국 도장이 보이지 않는다. 3년만의 해외 요트 트립인데 마음은 해외여행 특유의 설레는 느낌이 별로 들지 않는다. 유럽에서 50피트 배를 사서 이송 중인, 홀로 인도양을 건너며 여러 어려움을 겪었을 김선장을 위한 정신적, 물질적 응원의 목적이 첫 번째. 아직 장거리 해외 요트 트립 경험이 없는 요트 클럽의 안선장, 조선장에게 장거리 요트 트립의 경험을 주는 것이 두 번째. 개인적으로 적도 근방의 낮은 위도권의 뜨거운 바다에서 세일링 경험을 갖는 것이 세 번째 이번 트립의 이유 정도 될 것 같다. 안선장, 조선장 모두 연구원이자 회사원으로 시간을 쪼개 쓰며 바쁜 일상을 지내고 있는 한국인들이라 20일 가까운 시간 동안 짬을 내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그래도 지난 몇 년간 여러 요트 모험들로 손발을 함께 맞추고 있는‘찐’크루들이라 함께 하는 여정이 기대된다. 20kg을 넘지 않게 가방에 꾹꾹!! 쿠알라룸푸르 비행기 출국 이틀 전. 짐을 준비하는데 우리가 비행기에 가져갈 수 있는 물품은 인당 20킬로, 세 명이 60킬로가 제한이다. 이고
콩알 하나 김 준 태 누가 흘렸을까 막내딸을 찾아가는 다 쭈그러진 시골 할머니의 구멍난 보따리에서 빠져 떨어졌을까 역전驛前광장 아스팔트 위에 밟히며 뒹구는 파아란 콩알 하나 나는 그 엄청난 생명을 집어 들어 도회지 밖으로 나가 강 건너 밭 이랑에 깊숙이 깊숙이 심어 주었다 그때 사방 팔방에서 저녁 노을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해설 하찮고 관심을 두지 않을 너무나 작은 생명에 소망을 두는 삶은 인간보다 노을이 시퍼런 눈으로 관찰하며 격려한다. 인간과의 교감은 그 할머니의 마음을 이해하는 데서 시작될 수 있다. 막내딸을 찾아가며 보따리 보따리 싸 들고 가지만, 헐거운 매듭으로 삐져나온 아주 작은 생명을 섬세히 이해하는 마음.
딸아! 함께 가자! 언제까지일지 모르겠지만 아빠가 또 함께 걸어갈게! 무기로 앞세울 수 있는 건, 60년 공력 담긴 소리를 배운 것 하나. 근 한 달간 처음 참가하는 판소리 대회 출전을 준비하고 있는 초등학교 4학년 딸아이의 매니저이자 음악 디렉터, 운전기사, 사진사로 바쁜 시간을 보냈다. 코로나 이후 열린 첫 대면 메이저 대회라 그런지 소리를 배우는 초중고 학생들이 서울, 광주, 대구 등 전국에서 77명이 몰려들었다. 대회장 앞이 참가자와 부모들로 가득 찼고 자세히 보니 젊은 명창들이 가르치는 아이들을 서 너 명씩 앞세우고 직접 대회에 참석했다. 나이 지긋하신 문화재 할머니 선생님 밑에서 이제 1년 남짓 아장아장 소리를 배우고 있는 딸아이는 그런 현장 지원을 받기 쉽지 않다. 화려한 동작을 앞세운, 연출된 멋들어진 발림도 없다. 무기로 앞세울 수 있는 건 그저 60년 공력이 담긴 소리를 잘 받아 배운 소리 하나. 작년 어린이 판소리 왕중왕 대회에 출전했던 친구들도 여럿 보인다. 초등학교 아이들이라 1년 성장이 큰 차이가 난다. 딸아이는 4학년. 키는 좀 자랐지만 몸이 말라 통통하게 살이 붙고 있는 5, 6학년 언니들보다 키도 작고 소리통 자체가 작아 힘으로
[손미정의 문화·예술 뒷이야기 11] 후회되는 일을 하지 않을 용기 다사다난했던 2022년의 달력이 마지막 한 장밖에 남지 않았다. 매년 연말이면 각 분야마다 시상도 하고 MVP도 선발하며 한 해를 정리한다. TV를 켜면 방송사마다 연예대상, 연기대상 등이 한 해의 피날레를 장식하곤 한다. 개인적으로는 매년 이맘때가 되면 늘 하는 루틴 중에 ‘올해의 베스트’라는 작업을 하곤 한다. 이것에 대해서는 전 칼럼에서도 소개한 적이 있었는데, 한 해 동안 내가 읽었던 책 중에 감명 깊었던 책 베스트, 올 한해 새로 만난 사람 중 인상에 남는 사람 베스트, 올 한 해 봤던 공연·전시 중 가장 멋졌던 작품 베스트 등을 선정하는 작업이다. 나는 이 작업을 거의 20년 넘게 해 오고 있는데 다음 해의 새해 목표를 정하는데 도움이 되기도 하고 지난 한 해 동안 내가 무엇을 했는지 정리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 생각하여 계속 해 오고 있다. 이런 연중 이벤트를 가지고 있는 내가, 얼마 전 있었던 바둑 대회의 한 장면을 본 후 올해부터는 그 방법을 조금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다. 최근 삼성화재배 월드 바둑 마스터즈 대회가 있었다. 이 대회에서 신진서 9단이 우승, 최정 9단이 준우승
[공간과 빛과 인간시리즈 1] “여보, 부모님 방에 전등 바꿔드려야겠어요.” 인간과 영향을 주고받는 존재로서 공간인식 “인간은 환경-공간을 만들고, 동시에 자신이 만든 공간-환경에 지배를 받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공간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수동적인 존재로가 아니라, ‘나’라는 존재를 형성하고 빚어내는 적극적 존재라는 것이죠. 점잖은 사장도 예비군 군복만 입으면 본능에 충실해져 노상방뇨를 거리낌 없이 하는 것을 우리는 쉽게 보게 되는데, 옷 하나 바뀐 것으로 생각과 행동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태어나서 자라고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집이나 사무실 공간이 우리에게 주는 영향은 얼마나 클까요? 더군다나 북미와 유럽에서는 90%가 넘는 시간을 실내에서 보내고 있으니 집과 사무실 같은 공간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는 더 중요하다 할 수 있습니다. 건축, 보이지 않는 것들을 생각하다 얼마 전, 일산에서 열린 가장 큰 건축박람회에서 제일 인상 깊었던 것 중에 하나는 온도와 습도, 공기 등을 종합 관리하는 시스템 전시가 많아졌다는 것입니다. 이전에 건축이 디자인과 내외장 재료 등에 집중되어 있었다면, 이제는 그 건축 공간 안을 얼마나 인간에게 쾌적하고 건
80대 농부가 사는 삶 스마트폰의 장벽 가정환경조사서에 부모님 학력을 적어내라고 하던 학창 시절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빈칸을 채울 때, 국민학교 중퇴를 머뭇거리지 않은 것은 무엇 때문인지 모르겠다. 다른 친구들과 비슷한 처지여서이기도 했겠지만, 학력이란 것이 부모님을 부모님으로 보는 데 아무런 지장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감출 이유가 없어서겠구나 짐작해 본다. 아버지는 4학년 때, 엄마는 2학년 때 전쟁이 났다. 엄마는 아직도 보청기를 보추기라고 쓰신다. 그렇게 자신만의 암호처럼 달력에 써놓고 건전지를 갈아주지만 아버지는 좀 다르시다. 시골에서도 빈틈없다는 소리를 들으신다. 70년대부터 하우스 농사를 잘 지어 동대문 청과시장에서 너도나도 아버지와 줄을 대려고 애썼다. 60이 다 된 연세에도 주민센터에서 컴퓨터를 배우기 시작해 86세가 된 지금도 가락시장 시세를 주시한다. 자동차 면허도 단박에 따서 엄마의 환심을 샀다. 그런 아버지께서 넘지 못하는 벽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스마트폰이다. 조카의 스마트폰을 빌려 영상통화를 시도하니 부모님의 귀만 보인다. 얼굴 보고 통화하는 일은 상상도 못 하시고 두 분이 번갈아 가며 전화기에 귀만 갖다 대신다. 처음으로 부모님
[따뜻한 동네 가게 스토리] 시로써 인생을 다림질하는 우리 동네 詩(시)탁소 시를 쓰면 마음이 정화되고 평온해져요. 예전보다 사회가 복잡해지고 경쟁이 심하다보니 인간적인 면이 많이 없어졌습니다. 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도 상대방보다 내가 우위에 서려고 하니 힘이 듭니다. 그래서 저는 대인관계에서 힘들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때 시를 쓰며 마음을 부드럽고 정화하기 위해 노력을 많이 합니다. 저도 예전에는 한 성격했거든요. 허허. 세탁소를 운영하다 세탁소를 운영한지는 1호선 금정역 근처에서 15년, 이쪽 산본동으로 옮겨 17년, 도합 32년을 했습니다.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처음부터 세탁업을 시작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먼저 양복점을 시작하게 된 것도 참 우연이었습니다. 제가 4형제 중 첫째인데 아버지께서 시골 생활을 정리하시고 식구들을 다 데리고 서울로 이사를 오셨어요. 저는 중학교를 졸업하느라 조금 늦게 서울에 올라왔습니다. 아버지께서는 교복을 입고 있는 저를 호텔에 바로 취직을 시키겠다고 데리고 가셨어요. 지금 생각해보니 아버지께서도 너무 사회생활을 모르셨던 것 같아요. 누가 교복 입고 온 학생에게 일을 주겠어요. 호텔에서 바로 딱지를 맞고는 작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