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동안 일본의 직장문화 벗고 한국에서 새롭게 출발하기 ‘참새가 아무리 떠들어도 구렁이는 움직이지 않는다’라는 속담을 아시나요? 실력이 없고 변변치 아니한 무리들이 아무리 떠들어 대더라도 실력이 있는 사람은 다투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빅데이터를 전공한 저는 이런 실력 있는 자가 되기 위해 일본에 갔습니다. 로봇기술과 통계, 우주 관련 사업들에 있어 앞서가고 있는 일본에서 홀로 서보고자 했죠. 그리고 4년 동안 직접 살아보며 일본의 문화와 역사 등을 경험하고 싶었습니다. 일본의 첫 인상과 적응하기까지 처음 나리타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제가 느낀 인상은 어두운 조명과 축 쳐진 분위기였습니다. 그리고 너무 느린 비자동화 된 절차와 글로벌하지 않은 직원들의 영어 발음에 충격을 받았죠. ‘파스뽀또!’ 여권을 달라는 소리에 저는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어 종이에 써달라고 부탁했어요. 또한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면 교통카드를 꼭 사야만 했습니다. 한국처럼 모든 교통데이터가 통합되지 않아 신용카드나 체크카드로 결제할 수가 없었어요. 일상생활에서의 IT활용서비스는 그리 발전되어 있지 않아 불편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카드 한 장으로 다 해결했는데 말이죠. 그렇게 무거운 두 가방을 들고
[대륙문화에 대한 해양문화의 비판에 대한 비판] 감사합니다. 시진핑 국가주석님! 'Thank you, Mr. Xi!’ 브렛 스티븐스(Bret Stephens) 뉴욕타임스 2022년 10월 20일 친애하는 시진핑 주석님 (도입) 당신이 중국공산당의 주석으로 세 번째로 임명된 것에 대해 내 나라가 보내는 감사와 축하를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것이 아직 명확하지는 않지만, 당신이 하는 통치가 어떤 날인가는 다른 자유국가들을 비롯한 미국의 역사에 예상치 못했던 거대한 축복의 하나로 인식될 것이라고 우리는 믿습니다. 그런데 몇 가지 예외를 제외한다면, 이것은 당신이 10년 전에 처음으로 최고지도자가 되었을 때에 우리가 일반적으로 기대하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본론) 그 때(2013)로 되돌아가 보면, 중국이 고대에서 세계를 주도하던 문화와 가장 거대한 경제를 회복할 것은 단지 시간문제일 뿐이라고 서방의 많은 사람들은 결론 내렸습니다. 매년 10%를 자주 넘겼던 중국의 놀라운 경제성장률은 우리(서방)가 이룬 보잘 것 없는 발전을 그늘에 가리우고 말았습니다. 한 산업에서 다른 산업을 - 정보통신, 은행, SNS, 부동산 - 막론하고, 중국회사들은 산업계의 리더가 되었
일점입혼(一鮎入魂) 40년! 한국 은어 낚시의 대가 ‘한용범’ “공부에 소홀할 수 있느니 낚시는 배우지 말거라~” 포항 부근에는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기수지역이 많습니다. 4~5월 봄이 되면 기수지역에 어김없이 바다에서 강으로 은어가 올라옵니다. 소상(遡上)이라고 하죠. 이 은어 낚시는 3년 전에 돌아가신 선친이 먼저 하셨어요. 낚시 실력도 친구분들에 비해 월등하셨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아버님은 일본 야마구치에서 태어나 해방 후 귀국을 하셨습니다. 그러다 보니 일본에 아는 분들이 많았는데, 그 당시 일본에는 은어 낚시가 대단히 발달해 있었어요. 아버님은 일본 분들과 종종 강으로 나가 낚시를 하시곤 했는데, 저는 점심도시락, 술 등을 자전거에 싣고 비포장도로를 달려 배달을 해야 했죠. 그때가 중학교 1학년쯤이었는데, 아버님이 식사를 하시는 잠깐 사이 낚싯대를 잡아보았습니다. 그런 저를 보시고 아버님은 “공부에 소홀할 수 있느니 낚시는 배우지 말거라~”하셨어요. 물론 나중에는 낚시가 골프로 바뀌긴 했지만요. 본격적으로 낚시에 첫 발을 내딛다 지금으로부터 40년 전 군대에 다녀온 후, 포항에서 가장 가까운 영덕 오십천에서 본격적인 낚시의 첫발을 디뎠습니다
우리 모두의 인생 밥집, ‘강민주의 들밥’ 헉--;;; 내가 이리 칼을 잘 다루다니! 고등학교 가정 실습시간이었어요. 선생님이 달걀지단을 가르쳐 주셨는데, 제가 선생님보다 칼질을 더 잘하는 겁니다. 무채, 당근 채를 신들린 듯 빠르고 고르게 썰어내는데, 저 자신도 놀랄 정도였어요. ‘내가 이리 칼을 잘 다루다니!’ 저희 집안엔 특별히 요리 잘하는 사람이 없는데도 말이죠. 요리에 관심이 많았던 저는 주말이 되면 도너츠, 빵, 고로케 등을 만들어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어 인기를 얻기도 했지요. 그리고 20대 아가씨 시절에는 안동에서 서울로 올라와 오빠, 남동생과 자취를 하면서 식사를 담당해야 했는데, 서점에 가도 패션 잡지보다 요리책에 손이 갔죠. 이상한 것은 음식 하는 게 싫거나 힘들거나 짜증나지 않고 재밌더라고요. 얼떨결에 시작한 식당? 경기도 이천에서 살게 되면서 사찰에 들어가 잠시 음식을 배울 기회가 있었어요. 음식 하나하나를 정성껏 배우니 아주 재밌더라고요. 저의 음식 솜씨를 보고 스님이 식당 이름, 메뉴 등 가게의 컨셉을 정해주셨죠. 그러면서 얼떨결에 바로 이 자리에서 2000년도에 식당을 시작했습니다. 음식점을 한다는 것은 저와 거리가 먼 세상인 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