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의 두려움도 뛰어넘는 문화예술의 힘 요즘 생활 속에서 환경을 보호할 수 있는 작은 실천거리로 내가 실행하고 있는 것 중 하나는 메일함에 쌓여있는 ‘지난 메일 줄이기’와 ‘노트북 안의 데이터를 정리’하는 일이다. 책상에서 몇 분이면 할 수 있는 이 작은 실천으로 탄소배출을 줄일 수 있다고 한다. 어느 주말 노트북 속의 사진데이터를 정리 하다가 평양의 유치원 앞에서 찍었던 사진을 보고 북한의 공연예술을 경험했었던 그때가 떠올랐다. 나는 90년대부터 공연장에서 근무를 해왔고 그간 맡았던 일들이 공연기획이었으므로 당연히 북측의 공연에 대해 지대한 관심과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던 중 민간외교 차원에서 북측 평양교예단이 2000년 6월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공연을 하게 되었다. 평양교예단은 유치원생부터 성인까지 악기연주와 노래 그리고 현란한 아크로바틱 공연 등을 선보였다. 그때 공연을 본 후의 느낌은 ‘아이들마저도 어른 못지않은 수준의 연주 실력을 가지고 있구나’라는 것과 아크로바틱의 경우도 ‘세련미가 부족하긴 했지만 그 기본기는 태양의 서커스나 기타 세계 유수의 공연단에 결코 뒤지지 않는구나’라는 것이었다. 그 후 2004년 나는 평양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
[한현석의 야생초 이야기 2] 동백(Camellia japonica) 겨울에 꽃이 피어난다고 동백(冬柏)이라 부르는 나무입니다. 이 나무는 주로 남부지방에 서식하고 있지만 내륙의 가장 북쪽 자생지로 고창의 선운사 경내를 들 수 있습니다. 그 외의 내륙에서 동백을 감상할 수 있는데 정보가 잘못된 것이 아니냐는 반문이 들겠지만, 누군가 일부러 심은 것이 아닌 스스로 자생하고 군락을 이룬 것이 고창의 자생지가 된 것이니 이점을 이해하고 보면 좋을 듯합니다. 동백은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중국과 일본에서 자생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동백 특징이라면 꽃이 반개화(半開花)상태에서 꽃송이가 떨어지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남부지방의 길가 가로수에 사용되는 동백은 자생종이 아닌 경우가 있어, 꽃이 활짝 피거나 겹꽃 등으로 피기 때문에 자생종과 도입종을 구분할 수 있습니다. 옛날 동백의 열매에서 짜낸 동백기름은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머리에 발라 머릿결을 단장하던 용도로 자주 사용되었죠. 멋쟁이였던 우리 아버지가 늘 기름을 발라 머리를 뒤로 넘겨 빗었던 기억이 납니다. 사실 그때 동백기름을 사용한 것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시기적으로 유추해보면 틀림은 없
[조경철의 한국사칼럼 28] 신윤복 <미인도> 속 ‘물(物)’의 정체 당기기만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밀어내면 아주 가버릴지도 모른다. <미인도>가 그렇다. 혜원 신윤복의 <미인도>는 나를 끝없이 끌어당긴다. 가슴 언저리 노리개를 매만지는 손길, 다른 한 손은 옷고름을 잡고 있다. 당기기만 하면 풀어질 듯하다. 치마가 내려갈까 눈길을 아래로 두니 한쪽 발을 밖으로 내밀고 있다. 마치 나에게 오라고 하는 듯이. 뭉게구름 모양의 트레머리를 한 모습은 마치 하늘에서 구름을 뚫고 내려온 선녀 같다. 짙은 머릿결에서 이어지는 목선에는 잔잔한 솜털이 그려져 있다. 가슴, 발, 머리, 목, 눈길을 둘 데가 없다. 한없이 당겨대는 그녀 앞에 나는 어쩔 수가 없다. 그런데 ‘미인’은 무슨 생각으로 내 앞에 이렇게 서 있을까? 이제 미인의 마음을 볼 차례다. 마음은 얼굴이다. 이를 보는 순간 멈칫한다. 무슨 표정일까? 알 수 없음에 밀쳐진다. 표정을 읽어낼 수가 없다. 끌어당기면서 밀어내는 묘한 그림이다. 《삼국유사》에는 서동요의 주인공 선화공주를 요염하면서 아름답다는 의미로 ‘미염무쌍(美艷無雙)’이라 표현했다. 그러나 끌어당기는 요
[손미정의 문화·예술 뒷이야기 1] ‘누구나’ 즐기는 예술 공연 예술계에 최근 자주 들리는 용어 중에 베리어 프리(barrier free)라는 말이 있다. 베리어 프리란 고령자나 장애인들도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물리적·제도적 장벽을 허물자는 운동을 말한다. 예술이란 원래 누구나 즐기고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나이나 신체적인 장애로 박탈당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이다. 그래서인지 문화예술계엔 장애인을 위해 베리어 프리를 표방하는 공연, 전시가 늘어나고 있다. 국립 현대무용단의 어린이 대상 무용 공연의 경우 시각장애인을 위한 무용 낭독공연이 있다. 이 연극은 마치 구연동화처럼 무용극의 한 장면을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말로 묘사해주는 공연이다. 이미 이 연극을 미리 봤던 나는 일부러 시각장애인용 낭독공연을 보았다. 낭독자의 디렉션에 따라 눈을 감고 낭독에 따라 온전히 상상력을 동원해가며 장면을 그려보는데 평소와 다른 방법으로 공연 보는 그 시간이 참 신선했다. 공연 보는 방법이 달라지니 상상력이 극대화 되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이제껏 눈으로 보던 익숙한 세상이 새로운 차원에서 열린 느낌이랄까. 시적인 표현으로 무용수의 동작을 듣는 것은 눈
박수칠 때 떠나는 용기 테니스에서 한 해 동안 세계 메이저 대회에서 모두 우승하는 것을 ‘캘린더 그랜드슬램’이라고 한다. 세계랭킹 1위인 노박 조코비치는 지난 9월에 열린 US오픈 한 번만 이기면 ‘캘린더 그랜드슬램’을 달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20대의 패기로 똘똘 뭉친 랭킹 2위 매드베데프와의 경기는 쉽지 않았다. 메드베데프의 강력한 서브와 스트로크에 밀려 두 세트를 내리 지고 끌려가고 있었다. 조코비치는 세 번째 세트도 5대 2까지 벌어졌다. 이후 가까스로 두 게임을 연거푸 이겨 5대 4까지 쫓아가고 있었다. 팬들의 열화같은 환호를 들으며 벤치에 앉아 잠시 휴식을 갖던 조코비치는 땀을 닦던 수건으로 얼굴을 감싼 채 엉엉 울었다. 왜 울지? 역전할 수도 있는 순간인데, 이길 수도 있는데… 사람들은 힘없이 무너지는 황제를 지켜보는 것이 안타까운 듯 했다. 결국 조코비치는 세 번째 세트를 내주고 ‘캘린더 그랜드슬램’ 달성에 실패했다. 나는 그날 경기의 결과보다 더 강렬하게 남아있던 조코비치의 눈물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조코비치가 수건에 얼굴을 파묻고 통곡하던 모습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조코비치의 눈물은 어떤 의미였을까? 조코비치는 그 순간이 바로 자신
[한현석의 야생초 이야기 1] 용담(Gentiana scabra Var.)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독자 여러분! 기쁜 소식을 전합니다. 충북 청주시에서 ‘태극화훼농원’을 운영하고 계시는 한현석 대표님이 독자분들을 위해 야생초에 대한 이야기를 매월 기고해주시기로 했습니다. 올해 12월호 보라색 꽃인 관상용 야생화 ‘용담’스토리를 시작으로 내년에 더 풍성한 이야기를 담아주실 것을 기대해 봅니다. 용담은 전국의 산야에서 볼 수 있는 여러해살이풀입니다. 초장은 20~70cm로 개체마다 차이가 크며 줄기 상단에 보라색 꽃이 피어납니다. 개화 기간이 긴 편이라 관상용으로 사랑을 많이 받고 있는 야생화이죠. 이 꽃은 늦은 가을까지 우리의 들녘을 장식하는 아름다운 꽃으로 늦여름에 피기 시작하여 11월까지도 볼 수 있답니다. 용담(龍膽)은 ‘용의 쓸개’라는 의미입니다. 용담은 오래 전부터 뿌리를 말려 약재로 사용했기 때문에 그 약효에 관련한 일화가 많고 그 맛이 매우 쓴 것이 특징이죠. 얼마나 쓰면 이름을 용담이라 했을까요? 시험 삼아 뿌리를 조금 잘라서 입에 넣어보면 쓴맛 때문에 눈앞에 용이 왔다 갔다 할지도 모릅니다. 용담은 도시에서는 보기 어렵지만 한적한 시외에서 볼 수
[조경철의 한국사칼럼 27] 무령왕릉 진묘수, “너를 천년동안 지켜줄게” 백제는 흔히 ‘잃어버린 왕국’이라고 합니다. 잃어버린 게 많아서인지, 잊은 게 많아서인지, 빼앗긴 게 많아서인지 모르겠지만, 700년 역사에서 남아있는 것이 별로 많지 않습니다. 아마 일제강점기 상당 부분 도굴 또는 도굴에 가까운 발굴로 상처를 입었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령왕릉은 구사일생으로 도굴되지 않았습니다. 1971년 발굴됐으니 올해로 벌써 발굴 50주년이네요. 무령왕릉이 도굴되지 않은 건 일종의 행운이었습니다. 일제강점기 발굴(도굴)자의 착각 덕분이었지요. 가루베 지온(1897~1970)은 송산리 고분들을 발굴하면서 무령왕릉을 능이 아닌 언덕으로 생각했습니다. 1971년 여름 어느 날, 긴 장마에 대비하여 송산리 고분의 배수로를 만들던 중 땅을 파던 삽 끝에 무언가 걸렸습니다. 아래를 파보니 그곳에는 한 번도 손대지 않은 원형 그대로의 무령왕릉이 있었습니다. 무령왕릉 안에는 능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 있는 지석(땅속에 묻는 비석)을 비롯해 수없이 많은 유물이 들어있었습니다. 무령왕릉의 입구는 벽돌로 막혀있었는데, 벽돌을 허물자 안개인 듯, 수증기인 듯한 기운이 뿜
[retrospective & prospective 35] 지금은 완벽한 계획보다 실행을 해야 할 때 매일 아침 뉴스는 여전히 전날 코로나 확진자의 숫자로 시작합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코로나로 꽁꽁 묶여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확실히 분위기가 서서히 바뀌고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백신 접종률이 70%가 넘으면 우리도 유럽처럼 ‘위드 코로나’를 선포하여 추락하고 있는 경제를 다시 살리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고, 내년 5월 대선을 위해 각 당에서는 대표주자들을 선발하는 것에 모든 에너지를 모으고 있는 듯합니다. 아마도 내년쯤이면 우리는 독감 백신 맞듯이 코로나 백신을 맞게 될 것이고, 코로나도 여타의 다른 바이러스들처럼 다스릴 수 있는 질병으로 분류될 것입니다. 사회생활이나 개인 생활의 변화 측면에서 보자면 변화 속도가 느렸던 과거에는 조금 먼 미래라도 잘 예측하여 계획하면 얼마든지 새로운 환경과 상황에 대처할 수 있었지요. 그리고 계획을 철저히 잘 세우는 사람이 식견 있고 혜안 있는 사람처럼 대우받았었습니다. 왜냐하면 다가오지 않을 미래를 준비하는 것은 잘 짜여 진 계획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미래 자체가 불확실하고 불투명
[손미정의 문화·예술 뒷이야기 6] 감동받는 취임식을 기대하며 주변이 어느새 연두에서 초록으로 물들었다. 아름다운 날씨의 한 가운데에서 우리는 새 대통령을 맞이했고 새 정권의 취임식을 볼 수 있었다. 취임식을 보면서 문득 우리나라엔 쇼 엔터테인먼트, 공식행사 등을 전문으로 연출하는 사람이 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청와대 행사 같은 것은 여러 비서관들이 직접 또는 외부 전문가와 함께 만들 것이고 대부분 이전에 했던 방식에 덧대거나 빼거나 해서 비슷한 모양새의 행사를 만드는 것 같다. 큰 기대를 한 취임식 연출은 아니었지만 뭔가 가슴 깊이 뿌듯하고 멋지다는 느낌이 드는 행사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공연기획자의 목표는 최고의 스테프들을 모아 관객들에게 감동을 주는 작품을 만드는 것인데 가끔 공연 못지않게 각종 부대 행사를 기획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마다 내가 직접 가 보았거나 경험해 보았거나 외신을 통해 접했던 비슷한 행사를 떠올리며 격식과 의미를 부여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규모 있는 행사의 구성·연출 등을 공부하기에 좋은 자료는 올림픽 개회식이다. 꽤 오래전부터 올림픽 경기는 놓치더라도 개막식은 챙겨보고 있다. 개최국의 문화수준을 뽐낼 수 있는
[겨울 요트 여행기 (4)] 돌풍을 지나 한겨울의 요트 비박 낚시객들의 성지들 중 하나인 아름다운 외연도를 벗어나 북쪽을 향한다. 오른쪽 멀리 길죽하게 누운 안면도가 보인다. 오늘은 8물, 하루에 10미터씩 물이 오르락내리락하는 12월 대사리의 바다는 결코 녹록치 않다. 하지만 그래서 더 바다로 나와 봤다. 이 추위와 물때를 경험하고 견뎌낼 수 있다면 한국에서 겪는 다른 항해의 두려움들이 사라질 거라는 생각에서다. 또 잔잔한 한강에 익숙해져 있는 함께 한 크루들에게도 바다의 맛을 제대로 경험시켜 볼 요량이었다. 5미터 파도를 견뎌본 사람은 3~4미터 파도에 두려움을 갖지 않는다. 서해는 멋진 바다이지만 세일러들에게는 어려운 바다다. 높은 조수간만의 차 외에도 근해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갯벌과 섬들 사이 곳곳에 그물들이 복병처럼 깔려 있다. 갯벌이 멀리 깔려 있다는 건 수심 예측이 쉽지 않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남쪽으로 긴 항해를 갈 땐 그물과 저수심, 뻘밭을 피해 부러 먼 바다로 돌아 나간다. 서해 물때를 견뎌 본 사람은 아마도 전 세계의 어떤 조류들도 두려워하지 않을 게다. 역조류와 함께 바람 방향이 맞지 않아 배가 3.5노트의 속도로 겨우 안면도를 벗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