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대나물 (Lamium amplexicaule) 어느 해 겨울이었습니다. 늦은 밤 심심함을 달래기 위해서 먹거리를 주문하고는 문밖에서 배달 오토바이 소리가 들려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가슴 한쪽이 빈 것 같은 나날이 이어집니다. 마음을 추스르려 들판을 무작정 걸어봅니다. 양지바른 둔덕에 광대나물이 피어있습니다. 광대나물은 3~5월이 개화기입니다만, 무슨 연유인지 추운 겨울에 꽃을 피우고 길을 걷는 저를 바라보며 광대짓을 하며 흔들거립니다. 겨울이면 당연한 일이지만 눈이 내렸습니다. 눈치도 없이 깊은 겨울에 꽃이 피어있던 광대나물이 걱정스러워 들판으로 달려가 봅니다. 눈을 뒤짚어쓰고도 어떤 일도 없었던 듯 환하게 웃고 있습니다. 광대나물은 잡초로 취급되는 야생화입니다. 눈을 뒤집어쓰고도 꽃을 피우고 있었던 들판의 광대나물의 꽃말은 ‘봄맞이’입니다. 아마도 가슴 시린 겨울도 어느 날 지나갈 것입니다. 꽃말처럼 흥겨움으로 봄을 맞이할 날을 기다리며 찬바람 들어오는 현관문을 단속해 봅니다. 태극화훼농원, 한현석 행자부/농림부 신지식인 tkhanhhs@hanmail.net
[한현석의 야생초 이야기 7] 피나물 (Hylomecon vernalis) [피나물] 노란색 꽃이 4~5월경에 피고 잎겨드랑이에서 산형꽃차례로 1~3개의 꽃이 달리는 여러해살이 풀이다. 진한 녹색으로 변해가는 먼 산을 보면서 봄이란 계절이 있었는지 잊혀져 가는 요즘입니다. 지난 늦봄에 숲을 장식하던 식물을 되돌아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나무의 새순들이 파릇파릇 피어나는 계절에 습기 있는 산의 계곡은 다양한 꽃들이 앞을 다투며 꽃을 피우는데 그 중 제법 큰 꽃으로 진한 노란색의 꽃을 피우고 군락을 이루며 자라는 자생지를 직접 목격한다면 저절로 “우와~”라는 감탄사가 나오게 됩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렇게 예쁜 노란빛의 꽃밭을 지식 없이 거닐다가는 산속에서 놀라 뒤로 넘어질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피나물은 줄기나 꽃 등 자신의 신체 일부에 상처가 나면 붉은 즙이 나오는데 그 모습이 피를 흘리는 것처럼 보여 노란 꽃에 흩뿌려진 상처로 생긴 붉은 즙은 예쁜 꽃밭을 생각 없이 거닐고 돌아봤을 때 공포스럽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피나물의 이런 행동은 자신을 보호하려는 것인데 생각 없이 산속에 꽃을 피운 것 같아도 식물 역시 다양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
[한현석의 야생초 이야기 5] 얼레지Erythronium japonicum 봄기운이 가득합니다. 한낮에는 나른하고 졸린 것이 봄이면 도지는 불치병인 춘곤증이 다시 발병한 듯합니다. 직장인이라면 편하게 쉬거나 어디론가 떠날 수 있는 주말을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나른한 날의 연속입니다. 깊은 산속을 찾아 나서 봅니다. 봄이 어디에 머물고 있는지 확인해 보려고 말이죠. 산속의 개울가에 도착하니 이미 이곳에 봄이 도착하여 사람들을 홀리고 있습니다. 그 산속에 ‘얼레지’가 활짝 피어 야생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사진기에 조금이라도 예쁜 모습을 담으려는 사진가들은 연신 땅을 기어 다닙니다. 얼레지는 초장이 20cm 내외로 작은 크기이기 때문에 땅에 납작 엎드려 사진을 찍지 않으면 좀 더 멋진 아름다운 장면을 사진으로 남기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얼레지라는 꽃 이름만 들어 보면 외국의 식물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지만 이 꽃은 순수한 우리의 산야에 자생하고 있는 자생화입니다. 아직 누구도 얼레지라고 불리게 된 이유를 알지 못하는 꽃입니다만, 어찌 들어 보면 더욱 친숙하게 들리기도 하는 야생화입니다. 간혹 얼레지를 길러보려 하는 분들이 있지만 얼레지 기르기는 포
[한현석의 야생초 이야기 1] 용담(Gentiana scabra Var.)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독자 여러분! 기쁜 소식을 전합니다. 충북 청주시에서 ‘태극화훼농원’을 운영하고 계시는 한현석 대표님이 독자분들을 위해 야생초에 대한 이야기를 매월 기고해주시기로 했습니다. 올해 12월호 보라색 꽃인 관상용 야생화 ‘용담’스토리를 시작으로 내년에 더 풍성한 이야기를 담아주실 것을 기대해 봅니다. 용담은 전국의 산야에서 볼 수 있는 여러해살이풀입니다. 초장은 20~70cm로 개체마다 차이가 크며 줄기 상단에 보라색 꽃이 피어납니다. 개화 기간이 긴 편이라 관상용으로 사랑을 많이 받고 있는 야생화이죠. 이 꽃은 늦은 가을까지 우리의 들녘을 장식하는 아름다운 꽃으로 늦여름에 피기 시작하여 11월까지도 볼 수 있답니다. 용담(龍膽)은 ‘용의 쓸개’라는 의미입니다. 용담은 오래 전부터 뿌리를 말려 약재로 사용했기 때문에 그 약효에 관련한 일화가 많고 그 맛이 매우 쓴 것이 특징이죠. 얼마나 쓰면 이름을 용담이라 했을까요? 시험 삼아 뿌리를 조금 잘라서 입에 넣어보면 쓴맛 때문에 눈앞에 용이 왔다 갔다 할지도 모릅니다. 용담은 도시에서는 보기 어렵지만 한적한 시외에서 볼 수
[한현석의 야생초 이야기 4] 노루귀(Hepatica asiatica) 봄이 온다는 입춘이 지나고 비가 내린다는 우수까지 지나면 긴 겨울도 서서히 물러갈 준비를 하는 시기가 됩니다. 거기에 더하여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깬다는 경칩도 지나면 깊은 산속의 계곡에도 봄이 찾아들고 차가운 계곡물도 졸졸졸 흐르기 시작하는 봄이 다가옵니다. 이 시기는 찬 기운이 계곡 주변을 감싸고 있지만, 작은 야생화들은 꽃을 피우기 시작하고 부지런히 산을 찾은 이들을 반겨줍니다. 이렇게 산속의 나무나 풀들은 푸른 새싹을 올리지 않았지만, 계곡의 시냇물이 흘러 습기 있는 산속에서는 노루귀가 꽃을 피우고, 이제 막 흘러가기 시작하는 계곡물 속에 비춘 태양을 즐기며 작은 꽃을 흔들거리며 피어납니다. 노루귀는 이른 봄의 꽃으로 잎이 나오기 전에 꽃부터 피는 야생화입니다. 산속 낙엽 덤불 사이에서 꽃만 올린 모습은 가녀린 느낌이 들지만, 얼마나 영리하고 영특한지 흐린 날이거나 밤이 되면 꽃잎을 오므리며 닫아 버립니다. 그 이유는 추운 밤 날씨에 암술과 수술이 동해 피해를 입어 번식에 지장이 생길 것을 우려하여 잎을 닫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런 생각도 없이 그저 계절에 따라 꽃이 피는 것처럼 보
[한현석의 야생초 이야기 6] 구슬붕이 Gentiana squarrosa 봄철 산과 들로 나들이를 떠나는 인파로 온종일 도로는 주차장처럼 변해가고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봄이면 온갖 꽃들이 형형색색으로 꽃을 피우고 사람들을 야외로 불러내기 때문일 겁니다. 각 지역에서는 이렇게 나들이 떠나는 사람들을 불러 모으기 위해서 예쁘고 화려한 꽃을 심어두고 놀러 오라고 손짓을 하고 있기도 하지요. 들판이나 산속에서는 소박한 야생화들도 인적 드문 장소를 찾아 떠나는 사람들의 발목을 잡고 발길을 멈추게 하려고 꽃을 피우고 눈길을 잡으려 열심인 봄철입니다. 나른한 봄철이면 우리나라 각처의 산과 들에서 보라색의 화려한 꽃을 피우는 품종이 있습니다. ‘구슬붕’이라 불리는 품종으로 키는 대부분 5cm 내외로 자라서 꽃을 피우고 있는데 가을에 꽃을 피우는 용담과 비슷하지만 용담에 비해 키가 매우 작기 때문에 ‘소용담’이라 불리기도 하는 야생화입니다. 산과 들을 무심코 걷다가 우연히 눈에 들어오는 보라색의 구슬붕이를 만나면 누구나 무릎을 꿇고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는데 이 꽃을 다시 한 번 보겠다고 그 자리를 찾아가서는 찾지 못하는 일이 흔한 품종입니다. 구슬붕이는 햇살이 비추는
[한현석의 야생초 이야기 3] 복수초 (Adonis amurensis) 긴 겨울밤이 어느 순간 조금씩 짧아지고 저녁 퇴근 시간의 밝기가 조금씩 환해지는 것을 보면 알게 모르게 봄이 우리 곁으로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요즘입니다. 이렇게 봄이 가까이 다가오면 산야에서 꽃 소식이 전해지기 시작합니다. 이때 단골로 등장하는 야생화가 바로 복수초입니다. 복수초는 한자로 이루어진 이름이라 한자를 해석해 보지 않으면 혼란스러운 식물명이기도 합니다. 무술을 가르치던 스승의 원수를 갚기 위해 무림을 떠도는 제자가 먼저 떠오르게 되지만 복수초는 (福:복 복) (壽:목숨 수) (草:풀 초)로 이루어진 이름으로‘장수하라’는 의미를 가진 풀입니다. 성미 급한 복수초는 해가 바뀌기 무섭게 남부지방에 꽃이 피었다는 소식을 전하기도 하는데 꽃이 피는 시기는 주로 2월에서 4월까지입니다. 복수초의 가장 큰 특징이라 한다면 이른 봄에 피는 꽃이면서도 지름이 3~4cm 내외의 큰 꽃이 핀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봄꽃들이 추위로 작은 꽃이 피는 것과 다르게 큰 꽃이 피기 때문에 기온이 낮아지는 저녁이 되면 꽃잎을 닫아 암술과 수술을 보호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한현석의 야생초 이야기 15] 홀아비꽃대 Chloranthus japonicus 하루가 다르게 햇살이 따스해지는 듯합니다. 긴 겨울이 지나고 봄 햇살이 산속에 도착할 무렵이면 산속에서 조용히 꽃을 피우는 야생화가 있습니다. 화려하거나 멋진 색상의 꽃이 피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들의 관심에서 약간 비켜있기는 하지만 나름의 멋이 있는 식물입니다. 예전에는 이 품종의 꽃을 보면서 꽃의 모양이 ‘홀아비의 깎지 않은 수염처럼 보인다’고 하여 ‘홀아비꽃대’라고 부른다고 했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때부터인가 ‘하나의 꽃대에 한 송이의 꽃이 피기 때문에 홀아비꽃대라 부른다’는 것으로 식물명의 유래도 변해가고 있는 듯하여 혼란스럽기는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예전 홀아비라 하면 아내를 잃고 관리해주는 사람이 없으니 수염도 덥수룩하게 자라고 목욕이나 집안 청소를 하지 않으니 사람 꼴이 말도 아닌데다가 모든 것이 곤궁하여 냄새까지 나서 홀아비 냄새라는 말까지 나오는 지경이었지만, 요즘이야 세상이 변하여 홀아비라 하더라도 쓸고 닦고 자신을 꾸미는 일에 소홀하지 않으니 예전의 홀아비와 요즘의 홀아비는 하늘과 땅처럼 차이가 커졌습니다. 그러니 하찮게 여기는 식물의 유래 정도야 세
[한현석의 야생초 이야기 16] 길마가지나무Lonicera harai 긴 겨울이 지나갈 것 같지 않더니 계절은 변하여 기다리던 봄이 드디어 우리를 찾아왔습니다. 봄바람에 마음이 들떠 산과 들로 나들이를 나가봅니다. 산의 초입에는 나무들의 새순이 돋아나오고 있습니다.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보면 작은 꽃도 눈에 들어옵니다. 그 중 이른 봄 산의 초입에서 만날 수 있는 나무가 ‘길마가지나무’입니다. 이름이 길고 발음하기도 어려운 듯하지만 봄바람 들어 산을 찾는 사람들을 반겨주는 매우 기특한 나무라 생각됩니다. 이 나무의 이름 유래는 소의 등에 얹는 안장인 길마와 비슷하다 하여 이름이 지어졌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향기 좋은 꽃이 지나가는 사람의 발길을 막는다고 하는 유래가 더욱 설득력이 있고 이해하기도 좋은 이름 유래인 것 같습니다. 또한 이 나무의 잔가지가 길을 막는다고 그렇게 지어진 것이라는 설도 전해지고 있어서 적당한 것을 생각하며 길마가지나무를 살펴보면 조금은 더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습니다. 길마가지나무의 꽃말은 ‘소박함’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꽃의 색상이 화려하지 않고 꽃의 크기도 작기 때문인 듯합니다. 하지만 꽃말과 다르게 무리 지어
[한현석의 야생초 이야기 12] 수선화(Narcissus) 바람은 여전히 차갑게 느껴지지만 봄은 앞산 너머까지 와 있을 듯합니다. 겨울에 내린 눈은 수식어도 붙지 않고 눈이라고 표현하지만,'' 이맘때 쯤 내리는 눈은 춘설(春雪)이라고 하는 것을 보면 분명 봄이 가까이 와 있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양지바른 화단이나 정원의 한쪽을 살펴보면 차가운 계절임에도 수줍음을 참아가며 다소곳하게 꽃이 핀 수선화를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드물기는 하지만 춘설을 이고 진 수선화를 만난다면 겨울이 지나간 것이 확인되면서 가슴이 뛸지도 모릅니다. 긴 겨울의 지루함과 추위에 몸이 움츠러들어 힘을 쓰지 못하던 것도 지나가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수선화'(水仙花)는 한자로 이루어진 이름입니다. 옛 어른들은 하늘에는 '천선'(天仙)이 있고 땅에는 '지선'(地仙)이 있고 물에는 '수선'(水仙)이 있다고 했다네요. 그만큼 이른 봄에 꽃을 피워 사람들에게 봄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알려 주는 '수선화'를 사랑스런 마음으로 가꾸고 바라보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정원이 딸려 있거나 작은 꽃밭이 있는 전원생활을 한다면 돌아오는 봄에 수선화 구근을 몇 개 구입해서 양지바른 장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