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현석의 야생초 이야기 5] 얼레지Erythronium japonicum 봄기운이 가득합니다. 한낮에는 나른하고 졸린 것이 봄이면 도지는 불치병인 춘곤증이 다시 발병한 듯합니다. 직장인이라면 편하게 쉬거나 어디론가 떠날 수 있는 주말을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나른한 날의 연속입니다. 깊은 산속을 찾아 나서 봅니다. 봄이 어디에 머물고 있는지 확인해 보려고 말이죠. 산속의 개울가에 도착하니 이미 이곳에 봄이 도착하여 사람들을 홀리고 있습니다. 그 산속에 ‘얼레지’가 활짝 피어 야생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사진기에 조금이라도 예쁜 모습을 담으려는 사진가들은 연신 땅을 기어 다닙니다. 얼레지는 초장이 20cm 내외로 작은 크기이기 때문에 땅에 납작 엎드려 사진을 찍지 않으면 좀 더 멋진 아름다운 장면을 사진으로 남기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얼레지라는 꽃 이름만 들어 보면 외국의 식물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지만 이 꽃은 순수한 우리의 산야에 자생하고 있는 자생화입니다. 아직 누구도 얼레지라고 불리게 된 이유를 알지 못하는 꽃입니다만, 어찌 들어 보면 더욱 친숙하게 들리기도 하는 야생화입니다. 간혹 얼레지를 길러보려 하는 분들이 있지만 얼레지 기르기는 포
마흔이 되어서야 겨우 깨달은 행복 나는 별똥별이다. 요즘 내가 쓰는 별칭이다. 작년 말에 어린왕자를 여러 차례 읽은 적이 있다. 그리고는 어느 날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하늘에서 갑자기 뚝! 떨어졌다! 갑자기 떨어진 별과 같다’상상력이 풍부한 어린왕자 이야기를 읽어서였을까 참 엉뚱하지만 딱 나 같은 별똥별이 떠올랐다. 1982년 아주 추운 겨울이다. 입춘이 막 지났으나 아직 봄기운이 느껴지지도 않는 날, 어두운 새벽 1시가 넘어서 큰 달이 뜨는 음력 정월대보름, 대한민국에서 가장 추운 강원도 고한에서 태어났다. 어느 책에선가 우주의 균형이 깨지면서 사람이 탄생한다고, 그래서 모든 사람은 절대 균형에 있지 않다는 글귀를 읽은 적이 있다. 그 글귀를 읽으며 난 어떤 에너지 균형이 깨져 났단 말인가? 추운 겨울의 깜깜함과 크고 밝은 보름달이 대비되는 날을 닮은 나를 그려본다. 강원도 고한은 당시 탄광촌으로 조금 과장하자면 현재로서는 대기업과 같은 탄탄한 국영기업이었다. 사람들은 내가 강원도에서 살았다고 하면 농사짓고 구수한 사투리도 쓰며 얼굴도 햇볕에 그을린 그런 아이로 자랐을 것이라 상상하겠지만, 그렇지 않았다. 대다수가 깨끗한 직원 아파트에서 정시
의외의 장소와 공간이 주는 매력사람을 잇는 장소 도봉산 자락 아래에 위치한 방학중학교를 방문했다. 직사각형의 운동장에 본관 건물과 부속 건물이 ㄷ자 모양으로 세워진 형태다. 노란색의 건물 외경과 구령대의 위치는 예전에 많이 보아서 익숙한 전형적인 학교의 구조였다. 겨울방학 중이라 학생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눈으로 뒤 덮인 운동장과 교사에서 짙은 향수가 풍겨 나왔다. 이곳을 찾은 이유는 도봉구 마을학교 교사들에게 핸드폰으로 영상제작하는 방법을 가르치기 위해서다. 도봉혁신교육지원센터의 연락이 아니었다면 굳이 학교 안으로 들어와 볼 엄두도 못 냈을 곳의 내밀한 공간으로 들어왔다. 강의를 하면서 내가 사는 곳에서 가장 가까이 위치한 공간에서의 수업이었고, 이웃 동네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기대와 공동체에 무언가 이바지할 수 있다는 반가움과 설렘이 교차했다. 지금 사는 노원구와는 서로 맞대어 있고, 어린 시절엔 수유동에 살았으니 도봉구는 늘 고향 같은 느낌이다. 도봉구 수유동에서 강북구 수유동으로 행정이 나뉘는 시간에도 북한산과 도봉산은 서로 이어져 나의 걸음을 맞이해주던 쉼터와 같았다. ‘꿈빛터’라는 건물에서 수업을 진행했다. 학교와 마을을 잇는 공간인 이 건
같이 ‘한옥 밤마실’에 다녀오실래요? ‘한옥 밤마실, 한옥 저자 3인의 북토크’ 서곡 일은 언제나 작은 것에서 시작된다는 말이 진리임을 확인했다. ‘한옥 밤마실, 한옥 저자 3인의 북토크’가 이루어진 것도 마찬가지였다. 《안녕 나의 한옥 집》을 미국에 살면서 출간한 임수진 작가를 만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아니 그전에 임작가의 책을 《Hanok, The Korean House》와 《서촌 홀릭》등을 쓰신 로버트 파우저 박사님께 전달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소피님의 아이디어에서부터 출발 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한옥에 대한 관심이 같으니, 한옥 관련 책은 파우저 박사님도 당연히 좋아하실거라 여겼다고 했다. 두 분이 책으로 서로 인연을 맺고 있었지만 북토크에 대한 이야기가 구체화 된 것은 유진하우스에 임작가가 오면서부터였다. 나는 이미 임작가의 출간 소식을 친구를 통해 듣게 되었고, 한국에 오면 꼭 우리 집에 오기로 미리부터 약속을 해 두었었다. 이번에 서울에 오자마자 우리 집에 온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학창시절 혜화동에서도 오랫동안 살았다고 하니 더 남다른 인연이다 싶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우리 둘이 한옥 관련 책을 썼으니 한옥 북토크를 열면 되겠다
[바다의 문법이야기 17] 겨울 요트 여행기(2) 크루들과 테스트로 요트를 몰아 바다를 나가는데 생각보다 속도가 잘 나오지 않는다. 엔진을 쓰는 기주만으로 4.2노트(시속 8km/h)정도. 배 바닥을 살피려 아래 고프로를 들이대니 바닥에 붙은 물풀, 따개비와 이물질들이 저항을 만들어 배의 속도를 늦추고 있다. 돌아와 선장님께 배에 대해 관찰한 내용들을 말씀 드리고 막배로 위도를 나왔다. 돌아오는 길 크루들과 배를 본 소감들을 나누며 마음을 정했다. ‘이 배를 사서 서해를 누비자.’ 마음을 먹은 이상 지체할 이유가 없었다. 12월 초에서 1월로 요트 딜리버리가 넘어가게 되면 한겨울에 배를 옮기기 쉽지 않다. 해가 짧아져 하루에 배를 안전하게 옮길 수 있는 시간은 아침 7시부터 5시까지 10시간 남짓. 시간당 5노트를 평균으로 잡으면 50마일, 약 100km 정도 운항이 가능하다. 먼 거리 항해가 불가능하고 겨울 내내 바닷바람의 추위를 견뎌야 한다. 날씨를 보니 12월 20일부터 21일까지 위도의 낮 기온이 10~13도를 가리킨다. 물때는 대사리 때라 연중 가장 물살이 빠른 때. 물때가 안 맞으면 역류를 만날 경우 속도가 나질 않아 자칫 위험한 변수가 될 수 있
식량 안보를 책임지는 농업로봇을 꿈꾸며… 안녕하세요. 저는 '메이커 윤종섭'입니다. 무슨 '메이커'냐고요? 무엇이든 만드는, 그리고 앞으로도 만들고 싶은 메이커입니다. 어릴 때부터 만드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좋아했습니다. 레고, 건담뿐 아니라 우체국 아저씨가 되고 싶다고 종이로 우체부 아저씨 모자도 만들고, 철사와 한지 등으로 꽃도 만들고,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정말 많이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남들이 하는 것, 학교에서 시키는 것만 하면서 자연스레 만들기와는 멀어졌었죠. 딱히 무엇을 하고 싶다거나 그런 꿈 없이 대학을 다닐 때까지 남들이 다 그렇게 사니까, 똑같이 안하면 불안하기에 저도 열심히 살아오면서 의학전문대학원 입학을 앞두었던 2013년 어느 날, 사고로 인해 몇 개월을 꼼짝없이 누워있게 되었습니다. 별일이 없었다면 그냥 하던 대로 계속 살아갔을 텐데 그 흐름이 딱 끊어지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니 생각도 많이 하고 책도 읽으면서 내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제 자신에게는 엄청난 전환점이었죠. 그 전엔 항상 미래의 무언가를 잡으려 했었던 것 같아요. 고등학교 때는 대학교를 잘 가면 행복할거다, 대
‘퍼셀의 주제에 의한 변주곡과 푸가’ 속에 담긴 나와 이웃들의 솔직한 이야기 지난 호에서 다룬 소련의 작곡가 세르게이 프로코피에프(1891~1953)의 ‘피터와 늑대’(1936)가 흥미로운 스토리로 어린이들에게 오케스트라의 악기들을 소개하는 음악이었다고 한다면, 이번에 소개할 영국의 작곡가 벤자민 브리튼(1913~1976)의 작품, ‘청소년을 위한 관현악 입문(The Young Person’s Guide to the Orchestra; 1945), 부제로서 ‘퍼셀의 주제에 의한 변주곡과 푸가’ 역시 제목 그대로 청소년들에게 오케스트라를 소개하는 친절하게 잘 짜여진, 아름답고도 가슴이 웅장해지는 선율을 가진 곡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둘의 또 다른 공통점을 들자면, 혁명과 전쟁의 고통스러운 상황 속에서 음악을 통해 다음 세대를 이어갈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죠. 전자의 작품이 러시아와 주변 국가들을 피로 물들인 소련 공산당 혁명의 폭력적 혁명정신을 아이들에게 계속적으로 주입시키려는(프로코피에프에 의해 어느 정도 저지되었기는 했지만) 섬뜩한 배경을 가지고 있다면, 후자인 벤자민 브리튼의 작품은 영국뿐 아니라 전 세계를 고통스럽게 만든
[친환경 동네가게 제로에이블 스토리] ZERO(제로웨이스트) + ABLE(가능하게 하다) ZERO : ABLE덜 만듦으로, 미래를 더하다! 무심결에 쓰던 플라스틱 양에 깜짝 놀라, 시작된 환경에 대한 관심 직업상 가족들과 떨어져 생활하면서 제가 매일 사용하고 버리던 생수병, 즉석음식 1회용 용기들을 보고 문득 ‘나 혼자 쓰는 것도 이정도인데 하루에 버려지는 양은 얼마나 될까?’라는 의문을 가진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마침 그린피스에서, 가정에서 사용하는 플라스틱 종류와 그 양에 대한 조사를 하는 캠페인에 참여할 기회가 생겼죠. 매일매일 사용하는 음료수 병, 햇반 등 모든 플라스틱을 일일이 리스트에 적다 보니 생각보다 사용량이 엄청나다는 것에 깜짝 놀랐습니다. 무심결에 쓰던 플라스틱을 제 자신 스스로 자각하게 된 것이죠. 그때부터 제로웨이스트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환경과 지구관련 공부도 하고 책도 찾아보며, 그렇게 3년을 준비하고 ‘제로에이블’을 시작하였습니다. 제로에이블 안에서 먼저 하나 되기 현재 제로에이블은 저까지 총 5명의 파트너가 함께하고 있습니다. 작년 7월부터 본격적인 매장 오픈을 준비하면서 함께하게 되었죠. 그 과정에서 같은 생각으로 제로에
나는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결혼 후부터 지금까지 15년 동안이나 이사 갈 때마다 싸매고 다녔던 대학교 전공책을 미련 없이 싹 다 버렸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다양한 언어들에 관심이 있어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을 좋아했어요. 하지만 막상 언어를 전공으로 선택하니 잘해야 한다는 부담과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점점 커져 즐겁게 공부하지 못했습니다. 특히 시험에 대한 압박감에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잠도 편히 자지 못하며 피 말리듯 했던 통번역 대학원 시험에 낙방을 하고서는 다시 공부할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의 기대를 무너뜨리고 실망시켰다는 자책감과 다시는 그렇게 힘들게 공부하고 싶지 않은 생각이 강했지만, 그럼에도 마음 한편에는 여전히 미련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결혼과 출산으로 직장을 그만둔 저는 다시 빨리 일을 하고 싶었지만, 도저히 갓난아이를 시댁이나 친정 부모님께 맡길 수 없는 상황이라, 몇 년간 육아에만 전념해야 했습니다. 결혼 초반 남편은 직장에 잘 적응하지 못해 자주 옮겨 저희의 생활은 매우 불안정했어요. 게다가 밤늦게까지 일을 하니 아이를 키우는 것은 오로지 저의 몫이었죠. 새벽마다 깨어 우는 아이를 홀로 달랠 때는 한 번도
‘함께 하는 표현훈련’ 같이 해보실래요? 지난 5월 초, 연휴기간을 이용해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의 찐 협력자들과 2박3일의 일정으로 강원도 치악산 자락에 위치한 주련골에서 ‘2022년 봄 표현훈련’을 하고 왔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부터 머리 희끗한 어르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함께 사진을 찍고,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감상하며 가르치고, 시도 쓰고, 운동까지 함께 하는, 다양하게 했던 ‘표현훈련’의 내용을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독자들과 함께 나누어 볼까 합니다. ‘솔직해지자’를 넘어 ‘감동을 주자’로! 최근 유럽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비리얼’(BeReal)이라는 사진 공유 SNS가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기존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와의 가장 큰 차별점은 자신의 일상이나 외모를 꾸밀 시간을 주지 않는 것인데, 필터, 포샵, 상황 연출 등 그야말로 ‘주작 없이’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죠. 이러한 현상은 단순히 ‘솔직함’이 희귀 아이템이 된, ‘보여주기 위주’의 관계망에 대한 피로감을 넘어, 모두에게 내재한 ‘솔직한 자기표현’에 대한 갈망이 표출된 것일 겁니다. 우리 사회에서 ‘돌직구’, ‘사이다 발언’, ‘팩트 폭력’ 등이 자주